[한국사극영화] 2014년, 우리는 왜 ‘역사’에 주목하는가? 스크린에 돌아온 사극영화 열풍

by.김봉석(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평론가) 2014-12-19조회 3,191
사극

김한민 감독의 <명량>이 1700만을 넘어서며 한국영화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존경할 수밖에 없는 영웅 이순신을 내세운 블록버스터이기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나 완벽하게 적을 격파하는 명량해전을 스펙터클하게 보여준 <명량>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이순신의 일대기가 아니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확히는 모르는 역사적 사건, 그것도 가장 극적인 사건을 잡아낸 <명량>은 역사적 영웅의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명량>을 걸작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사건을 일으킨 영화임은 확실하다.

역사물은 왜 인기가 있을까
최근 한국영화계에서는 <명량> 이전에도 다양한 역사물이 만들어졌고, 인기를 끌었다. <역린>(이재규, 2014)은 기대만큼 흥행하지 못했지만 <광해>(추창민, 2012)와 <관상>(한재림, 2013)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광해>는 상업적으로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다. 적당히 진지하고 감동도 있는 역사물이지만 너무 안전한 틀에서만 움직인다. <관상>은 목표가 분명했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것만이 아니라, 동양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학문이자 처세술인 사주명리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운명을 내다보는 ‘관상’을 제목으로 내세워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에 성공했고, 수양대군의 역모라는 도발적인 사건을 관상과 운명이라는 소재와 잘 엮어낸다. 독특하게는 역사물에서 에로틱한 면을 강조한 <후궁: 제왕의 첩>(김대승, 2012)도 성공적이었다. <명량>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윤종빈 감독의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와 이석훈 감독의<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도 역사물이지만, 방향성은 사뭇 다르다. <군도>는 철종 13년의 농민봉기를 다루면서 두 명의 인물을 내세운다. 백정인 돌무치(하정우)는 조윤(강동원)에게 가족을 잃고 산적이 된다. 무공을 익히고 이름까지 도치로 바꿔 이름을 날리지만 그에게 절실한 것은 복수다. 나주 지역의 대부호인 조윤은 악랄한 수법으로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고, 고리대금으로 악명이 높다. <군도>는 윤종빈의 전작 <범죄와의 전쟁>(2012)처럼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지배하는 ‘경제 법칙’을 그리는 데 많은 힘을 쏟는다. 반면 <해적>은 조선 건국 시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오로지 <캐리비안의 해적>(고어 버빈스키, 2003)을 의식한 오락영화를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한다. 사건의 의미보다는 농담과 헛소동으로 일관하며 관객의 즐거움을 끌어냈다.

역사물 선호는 영화계만이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조선의 건국 과정을 그린 <정도전>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이다. 고려 말기, 귀족은 자신들의 이익 추구에만 열중하고 왕은 책임을 회피하는 어지러운 상황을 그리면서 <정도전>은 새로운 사회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백성을 위한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기꺼이 새로운 국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라가 썩었다면, 그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새로운 나라를 열어야 한다. <정도전>은 왕의 입장 즉 권력을 잡기 위한 개국이 아니라 진정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국민의 개국을 그리고 있다. 드라마에서 인기 있었던 사극은 <조선왕조실록>처럼 전통적인 왕의 역사를 그리거나 <장희빈>처럼 여성의 암투를 그리던 대세에서 벗어나 <다모>와 <추노> 등 피지배계급에 속한 다양한 인물의 역사까지 폭이 넓어져왔다. <정도전> 역시 조선의 개국을 태조가 아닌 신하 정도전의 눈으로 그려낸다. <정도전>은 흥행에 실패한 <역린>과 비슷한 지점이 있다. <역린>은 정조 즉위 1년인 1777년 7월 28일, 정조가 책을 읽던 존현각에 자객이 숨어든 사건인 ‘정유역변’의 하루를 그리고 있다. 왕이지만 노론을 중심으로 한 권력집단에게 목숨의 위협까지 받았던 정조. 영화가 시작되면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당시의 사료를 인용하며, 어린 정조에게 주변의 신하들이 해준 말이 나온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정조를 둘러싼 노론, 권력집단은 말한다. 가만히 있으라. 노론과 권력집단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고. <역린>은 절대적인 힘을 가졌지만 부패한 집단에 저항하는 보통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나치게 교훈적이었고, 이야기와 연출이 성겨 설득력이 약해 관객을 끌어들이지는 못했다. <역린>과 <정도전>은 모두 과거의 이야기다. 하지만 <역린>과 <정도전>은 지금 필요한 말을 이구동성으로 한다. 바뀌어야만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성을 다해야 하고, 정성을 다하면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고. 정조는 정유역변에서 살아났지만 요절했고, 조선은 왕자의 난을 겪으며 개국 정신이 증발해버렸다. 역사를 보고 읽는 것은 단지 과거의 사실을 알고 싶기 때문만은 아니다.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말했다.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떤 사건이 몇 년에 일어나고, 누가 언제 죽었는지를 아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단지 과거의 사실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그 역사적 사실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찾아내는 것이 역사학의 본질이다. 암기보다는 해석이 중요하고, 논리적인 추론에 의해 현재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 역사물의 인기는 분명하게 ‘현재’를 조명하고 있다.

스펙터클한 역사물의 매력
역사물의 인기는 단지 한국의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당장 올해 말에 리들리 스코트의 대작 <엑소더스>(2014)가 대기하고 있다. 홍해 바닷물을 가른 모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오래전에 <십계>(세실 B. 데밀, 1956)가 있었다. 이번에는 모세와 람세스의 대립을 중심으로 새로운 스펙터클을 보여줄 것이 분명하지만 또 하나의 믿음이 있다. 리들리 스코트는 <글래디에이터>(2000)에 이어 <킹덤 오브 헤븐>(2005)으로 역사물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낸 감독이다. <에일리언>(1979)의 프리퀄인 <프로메테우스>(2012)도 일종의 SF 역사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외계인의 개입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혹은 <블랙 호크 다운>(2001)에서 오로지 ‘현장’의 상황만을 리얼하게 그리면서 소말리아 모가디슈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보여준다. <엑소더스>가 <십계>의 감동을 뛰어넘을 것은 거의 분명해 보인다. 할리우드가 역사물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결국 스펙터클이다. 말 그대로 ‘볼거리’. 무성영화 시대 남북전쟁을 다룬 D. W.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1914)을 시작으로 바빌론의 붕괴, 그리스도의 수난 등 역사적 격동기를 그린 역사물 붐이 일었다. 연극이나 소설로는 실감할 수 없는, 거대한 오픈 세트를 짓고 많은 수의 엑스트라를 기용한 거대한 역사영화는 당대의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전성기는 1950년대였다. <십계>의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과 <벤허>(윌리엄 와일러, 1959)의 전차 경주 장면은 당시 극장에서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분하는 명장면이다. 한창 기세를 올리던 TV의 인기에 대항하기 위해 70mm영화의 중후한 품격으로 관객을 끌어들였던 스펙터클한 역사영화는, 바로 그 거대한 규모 때문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1963년의 <클레오파트라>(조셉 L. 맨키위즈, 1963)의 처음 예상 제작비는 300만 달러였지만 감독 교체 등 갖가지 사고 때문에 결국 3000만 달러로 급상승해 거대 스튜디오인 폭스의 경영 위기까지 불러왔다. 그 후 <삼손과 데릴라>(세실 B. 데밀, 1949) <엘 시드>(안소니 만, 1961) <스팔타커스>(스탠리 큐브릭, 1960) 등이 만들어졌으나 역사물은 내리막길을 탔다. 하지만 오픈 세트와 엑스트라의 인건비 등 흥행 수익을 초과하는 제작비 때문에 몰락했던 스펙터클 역사영화는 첨단의 디지털 기술 덕분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스티븐 스필버그, 1998)에서 스펙터클한 ‘사실’의 재현에 성공한 드림웍스는 할리우드만이 만들 수 있는 거대한 역사극 <글래디에이터>에 도전했다. 로마 제국의 명장 막시무스의 복수극을 그린 <글래디에이터>는 젊은 영화 관객이 극장에서는 거의 경험한 적이 없는 장르였다. 디지털 기술로 재현된 ‘과거의 스펙터클’은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건 <스타 워즈>(조지 루카스, 1977)나 <반지의 제왕>(피터 잭슨, 2001)이 안겨주는 판타지의 스펙터클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또한 역사물에서는 영웅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러셀 크로, 브래드 피트, 콜린 파렐 등의 배우들은 <글래디에이터> <트로이>(볼프강 페터젠, 2004) <알렉산더>(올리버 스톤, 2004) <킹 아서>(안톤 후쿠아, 2004)를 통해 현대의 찰톤 헤스톤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거대하고 기발한 전투가 중요하지만 역시 영웅 없이 역사물이 완성되기는 쉽지 않다. 21세기의 스펙터클 역사영화는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진 가짜 ‘리얼리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책으로만 읽을 수 있었던 역사 속의 풍경이, 우리의 눈앞에서 직접 펼쳐지는 것을 보는 경험은 무척이나 흥분되는 일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묘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스파르타와 페르시아 대군의 전투를 그린 <300>(잭 스나이더, 2006)은 어떤 가. 실제 역사적 흐름이나 디테일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근육질의 마초들이 엄청난 대군과 맞서 싸우고 장렬하게 죽어가는 비극의 순간만을 포착한다. 그 시각적 아름다움만을 부각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도 관객을 매료시킨다. 하지만 역사물에서 단지 볼거리만을 원하면 안된다. 우리가 되풀이해 기억하는 역사는 그 자체로 너무나 흥미롭고 극적인 사건이며 이야기다. 게다가 연구와 발굴을 통해 새로운 사료와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를테면 볼프강 페터슨의 <트로이>(2004)는 헬레나를 둘러싼 인간의 전쟁이자 신들의 싸움이었던 트로이 전쟁을 오로지 인간의 영역으로 재해석한다. 신화적 상징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인간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해석함으로써 신들의 질투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권력욕으로 전쟁이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안톤 푸쿠아의 <킹 아더>(2004) 역시 전설을 거부하고 로마의 파견 사령관이었던 아더 왕을 그린다. 신검 엑스칼리버를 치켜들고, 마법사 멀린의 도움으로 카멜롯의 왕이 되는 아더 왕의 전설은 <킹 아더>에서 전혀 보이지않는다. 이처럼 역사물에서 흥미로운 볼거리 또 하나는 역사적인 사실이나 사건이 어떻게 재해석되는가다. 최근 <헤라클레스>(레니 할린, 2014)처럼 속속 탄생하는 신화적 영웅을 그린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곧 현재다
미국 드라마에서도 <로마>와 <스파르타쿠스>를 비롯한 역사물이 꾸준하게 인기를 끌었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작품은 판타지물인 <왕좌의 게임>이다. 조지 R. R. 마틴의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를 원작으로 한 <왕좌의 게임>은 가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7왕국의 권력다툼을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시청률이 높지 않아 시즌 2가 사라질 위기도 있었지만, 열성적인 팬을 중심으로 인기에 불이 붙으면서 엄청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드래곤과 살아 있는 시체, 마법 등이 등장하는 판타지 <왕좌의 게임>과 역사물이 대체 무슨 관계인지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은 판타지인 동시에 역사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지 마틴은 대단한 역사 마니아인 동시에 장미전쟁에 대해서는 거의 광적인 집착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지식과 열정을 <왕좌의 게임>에 생생하게 투사했다. 1시즌에서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오로지 7왕국의 권력을 둘러싼 다툼만을 묘사한다. 그것만으로도 판타지 그 이상의 놀라운 이미지를 선사한다. 스펙터클로 승부를 내는 대작 역사 영화도 관객에게 ‘현실감’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단지 거대한 광경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왕좌의 게임> 역시 지금 이곳이나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에서나 마찬가지로 가장 추악한 것은 인간의 욕망이고 그들의 과욕이 세상을 망치고 있음을 제대로 보여준다. 과거를 보는 것은 단지 그 시절의 사건을 스포츠 경기처럼 즐기는 것을 뛰어넘어 현재로 소환해 재검토하는 것이다. 개인의 역사를 보더라도,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과거의 나다. 내가 과거에 했던 경험, 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했다. 그렇다면 미래는, 지금의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달려 있다. 역사극이 대중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과거 우리가 했던 일들을 통해 지금 우리가 할 일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바로 현재의 사건들인 것처럼 생생하게 현실을 환기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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