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 김기덕을 보다 시네마테크KOFA 8월 기획전

by.김소연(연세대강사) 2014-09-01조회 1,137

8월 시네마테크KOFA에서는 여름방학을 맞아 정신분석학을 경유해 국내외 영화를 새롭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리로 영화 상영과 강연이 결합한 기획전을 마련할 예정이다. 아래는 이번 기획전의 주요 상영 중 하나인 김기덕 감독 영화의 라캉적 해석에 대해 강연을 맡은 연세대 김소연 강사의 소개 글이다.

1996년 <악어> 이후 2014년 <일대일>까지 김기덕은 과연 어떻게, 얼마나 변해왔던가? 그는 룸펜 프롤레타리아를 주인공으로 삼아 한국 사회의 그늘진 자리들을 파헤치면서 처음 등장했다. 그래서 <악어>는 일종의 사회 고발적 영화로서 찬사받았지만, 이후 김기덕 서사의 전개와 함께 돌이켜보건대 이 영화의 가치는 ‘인간은 다른 인간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요컨대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집요한 궁리의 출발점이라는 데 있다. 물론 김기덕의 영화들은 차라리 잔혹한 폭력 영화, 도착적인 광기 영화, 노골적인 성애 영화라 불려 마땅해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그가 보여주는 사랑의 길에서는 종종 적대나 학대마저 다 사랑의 이름으로 추구되고 자행되기에, 김기덕의 영화들에는 늘 여성혐오증이니 사도마조히즘이니 하는 오명이 따라붙곤 했다.

그러나 사랑만큼 절대다수의 궁금증의 원천이면서도 포착하기 어려운 주제가 또 있을까? 김기덕 영화의 과도함은 그 난포착성의 한계를 뚫고 멜로드라마의 익숙한 경계 너머 사랑의 궁극의 지평으로 직행하기 위한 장치로 읽힌다. 그리하여 그는 선언한다. ‘이제 네가 어떤 존재인지 알았으니 나는 드디어 네가 될 수 있겠어’라고. 그리고 이렇게 존재와 존재의 불가능한 만남이 가능해진 순간, 그/그녀는 비로소 생과 사, 희로애락의 온갖 법칙과 규범 너머로, 현실과 환상의 구획 너머로 훨훨 날아오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참으로 아무나 넘볼 수 없는 무시무시한 동일시의 본령, 비타협적 자유의 클라이맥스가 아닌가. 그러므로 <봄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허공을 발차기하는 연기자 김기덕의 스톱 모션 이미지는 정확히 감독 김기덕의 현현이다.

김기덕 영화의 스캔들에서 사랑과 자유의 서사를 벼려내기 위해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믿음직한 의지처가 된다. 원근법적 이미지보다는 왜상적 이미지를, 주체의 객관적이고 추상적인 시선보다는 주체의 욕망을 사로잡는 응시를, 통합적 자아의 확립보다는 분열된 주체의 행위를, 환상으로서의 현실보다는 그 환상을 들쑤시는 실재의 침입을, 한쪽의 결여를 채우기 위해 상대를 전유하는 욕망보다 나의 결여와 타인의 결여가 만나 이루어지는 사랑을 강조하는 라캉의 관점과 김기덕의 영화들은 신기할 정도로 서로를 지지하고 있다. 대략 40여 년의 간격을 사이에 두고 발생한 이 놀라운 우연의 일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라캉과 김기덕 모두가 스스로를 기꺼이 반역의 위치에 세우고서 분투하는 주체이고자 했다는 데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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