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자료원을 이야기하는 네 가지 단편 한국영상자료원 창립 40주년 기념 영상

by.김종관(영화감독) 2014-06-24조회 1,805
아카이브의 유령들

한국영상자료원이 한국영화의 동반자로서 걸음을 내디딘 지도 어언 40년이 되었다. 그리고 소박하지만 나름의 열정으로 꾸준히 걸어왔던 그 시간을 김종관 감독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 ‘영화’로 담기로 했다. 한국영화의 동반자로서 자료원은 무슨 일을 하는 곳이며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여기, 이번 영화제를 통해 새롭게 제작되어 최초 공개될 김종관 감독의 ‘영상자료원을 이야기하는 네 개의 단편’을 소개한다.

한국영상자료원이 가진 여러 가지 목적성 중에 키워드 네 개를 선택했다. 발굴, 복원, 보존, 상영이다. 선택한 네 가지 테마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먼저 발굴. 사라진 영화들을 찾아다니는 영상자료원의 모험을 종종 들어본 적이 있고, 엉뚱하게도 가끔 멀더와 스컬리가 나오는 <엑스파일> 같은 분위기를 상상하고는 했다. 그와 같은 발굴의 모험극을 만들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스케일이 커질 것 같아 그만두었다. 누군가의 땀과 상상이, 시대의 문화와 자취가. 그들의 한 시기가 담긴 많은 영화가 사라졌다. 발굴의 기능을 전하기 위해 상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운규의 영화를 본 사람은 있지만 영화는 남아 있지 않다. 슬프게도 그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라진 영화들의 환상을 보여주는 작업을 하고 싶다.

두 번째 테마. 사운드가 유실되고 색깔을 잃어버리고 망가진 필름들이 복원되고 사람들에게 다시 보여진다. 복원이라는 테마에는 훼손과 회복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한 여자가 망가진 것들 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자기가 살아오면서 주변의 무엇이 망가졌는지, 무엇이 소중했는지, 무엇이 돌아오고 무엇이 떠나가는 지에 대한 모놀로그를 한다. 세 번째인 보존은 수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남자의 수집품이 드러나는 이야기다. 어떤 남자가 죽고 그의 일생을 기억하는 이는 없지만 그의 작은 유품이 그의 자취를 남기고 누군가가 그를 기억하게 된다. 마지막, 상영의 테마는 재회에 관한 이야기로 전한다. 발굴 및 복원되어 보존한 많은 영화는 결국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의 입장에서 관객과의 재회를 다루고자 한다. 다른 시대의 다른 관객을 만나는 옛날 필름이 주인공이다. 극장이라는 어두운 공간에서 새로운 관객을 만나는 잊힌 영화들의 이야기다. 네 개의 단락은 한 기관이 쫓는 의미들을 말할 수도 있고 더불어 지난 영화들의 의미를 이야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상실과 기억, 훼손과 회복, 수집가와 수집품, 재회와 다시 생긴 기회에 관한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한 조직의 기능에 이렇게 멋진 창작의 테마가 숨어 있었다는 것이 놀랍고 재미있었다. 소품에 가까운 작업이지만 영화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만든다는 즐거운 행운을 만난 것이 반갑다. 행운이 계속되고 재능 넘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의미 있는 결과물이 나오기를 바란다. 찾고 고치고 간직하고 나누려는 한 기관의 노력이 관객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위해 만든 노래의 가사를 전해드리고 싶다. 먼저 말한 에피소드 중 관객과의 재회를 이루는 옛날 영화에 관한 이야기에 배경이 될 노래다. 글로 멜로디를 들려드릴 수는 없지만 가사를 들려드릴 수는 있다.

극장에 앉아 옛날 영화를 본다. / 텅 빈 어둠 속에 숨어들어
몸을 기대고 영화를 본다. // 겨울 외투를 입고 여름의 바다를 본다.
/ 한낮을 피해 비 오는 밤을 만난다. // 서울의 지나간 자리 희뿌연
흑백의 세계 / 지금은 사라진 비밀의 자리들. // 몸을 기대고 영화를
본다. / 텅 빈 어둠 속에서 영화를, 비밀의 자리를, / 지금은 사라진 비밀의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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