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사의 공백 한 자리를 메운 영화의 귀환 <저 하늘에도 슬픔이>(김수용, 1965) 발굴

by.김소영(영화평론가) 2014-07-17조회 3,432
필름캔

한국영화사는 <아리랑>(나운규, 1926)으로 알려진 판타스마틱한 팬톰 정전(phantom canon), 유령을 핵으로 형성되어왔다. 이제 <아리랑>을 사라지고, 유실되고, 풍문으로 떠도는 영화들로 초창기 ‘내셔널’ 영화사를 구축해온 한국의 영화사 기술의 문제 안에 위치시킨다. 유령 정전이란 <아리랑>처럼 사라져버린 전설, 구술, 기억으로 존재하는 영화다. 식민지, 군사 독재 시기를 거치면서 필름 자체는 유실되었으나 이후 영화사가들과 평론가에 의해 민족주의 리얼리즘과 같은 일정한 방식의 해석으로 ‘정전’으로 견고해질 때, 이것은 실제 존재하는 정전보다 더 강력한 판타스마틱한 통일성을 가질 수 있다. 조선, 한국 영화사는 <아리랑> <임자없는 나룻배> (이규환, 1932), <만추>(이만희, 1966) 등 일련의 유령 정전을 그 핵으로 품고 있다. 사라진 필름, 아카이브는 유사한 역사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다른 내셔널 영화사 기술들과 더불어 대안적 영화사 기술을 모색할 수 있는 프레임이 된다.

지젝에 따르면 유령(phantom), 이 대상-방해물(the object impediment)은 판타지적 일관성을 보증하는 역할을 수행한다.1) 유령 대상(phantom object), 유령 <아리랑>, 그리고 유령 정전들은 사실 한국 사회의 판타지적 일관성을 보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에서의 영화(cinema)의 에피스테메 (episteme)를 재검토하도록 만드는 공백, 파열과 단절을 드러내기도 한다. 후기 식민 시기 내셔널 시네마의 역사 기술은 토착적 에피스테메를 찾는 고고학적 작업에 착수하는데, 이는 지식과 그것의 담론들의 토대가 되고 따라서 특정한 시대 안에서 그것의 가능성을 담보하는 조건들을 대표하는 역사적 선험성(a priori)이다. 전략적 장치로서,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은 영화 장치의 역사적 선험성을 영화에 대한 이해로 확장시킬 뿐만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위해 영화를 동원하는 사회적 장치를 이해하도록 한다.

‘팬텀 시네마’에 대한 방법론적 추론은 한국영화 연구의 추동력이 되어왔다. 여기서 나는 특정한 종류의 정전(canon) 형성에 관한 문제, 가장 중요한 영화로 추정되는 <아리랑> 등이 유실되어 볼 수 없게 되었으나 여전히 다양한 형태의 한국영화사 기술속에서 정전의 위상을 점하고 있는 영화 아카이브 기술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또한 이것을 문제라기보다는 비-서구, 포스트 식민 사회에서 정전 구축의 인식론적 위상을 사유하는 방식을 제공하는 문제틀로 놓고 검토하고자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저 하늘에도 슬픔이>(김수용, 1965) 역시 팬텀, 유령의 귀환이라고 볼 수 있다.

대만영상자료원에서 돌아온 이 영화가 가리키는 방향 중 하나는, 오시마 나기사의 <윤복이의 일기>와 더불어 1960년대 한국영화의 동아시아 상영, 제작 네트워크다. 즉 한국, 일본, 대만을 잇는 영화 중 하나가 <저 하늘에도 슬픔이>인 것이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의 장대한 원경 숏(long shot)에는 자연과 도시가 동시에 담긴다. 그 속을 어떤 점처럼 달려가고, 걷는 것이 이윤복(김천만)이다. 이 영화는 초등학교 4학년인 이윤복의 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어린 소년의 시선과 문자로 기술된 세계를, 영화는 운명과 구원의 시학으로 격상시킨다. 소년 윤복은 궁핍하기 짝이 없어 구걸, 껌 장사, 구두닦이 등을 하지만, 길가의 굶주린 소녀에게 돈을 내준다. 어린 윤복은 마치 운명과 마주친 고결한 비극의 주인공 같다. 이것은 탁월한 성취다. 대중 영화로서 아동의 일기를 신파나 멜로보다는 오히려 비극 쪽으로 밀고 가 완성시킨 것은, 감독의 역량이다. 시네마토그래프도 예의 원경과 근경을 대담하게 편집해 윤복과 세 남매를 짓누르는 헤어 나오기 어려운 가난을 운명처럼 직조한다.

이 영화를 찾으러 대만 영화 아카이브에 간 것은, 학술연구재단의 한국영화사 총서 사업(세계 속의 한국영화사)을 수행하면서 1960년대와 70년대 중반까지 대만에서 상영되었던 한국 멜로드라마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나서다.02 이전 국제 학술회의 등에서 대만 영화학자들을 만나면, 부모 세대나 자신이 본 1960년대 한국영화를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2013년 대만필름 아카이브 새 디렉터로 부임한 린 웬치 교수다. 린 웬치 교수에게 한국영화들의 대만 상영 시 중국어 제목을 주고 조사를 부탁했다. 그리고 2013년 9월 17일에서 20일까지 추석 연휴를 이용해 타이베이의 대만 필름 아카이브를 방문했다. 아카이브에서 일하는 황 테레사 씨와는 구면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 한국영화들을 찾아본 적이 있지만, 더 이상은 없다고 말했다. 나는 중국어 제목으로 재검색해줄 것을 당부하면서 당시 한국영화 개봉 리스트를 주었다. 다음 날 린 웬치 교수가 보내온 메일 속에는 <미워도 다시 한번>을 비롯, 한국영상자료원이 소장하고 있는 영화들이 보였다. 그러나 그중에서 <저 하늘에도 슬픔이 秋霜寸草心> 듀프 네거티브 필름이 있다는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그야말로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2013년 봄,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연구소 주최, ‘세계 속의 한국영화사’ 학술회의 중 일본의 사이토 아야코 교수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연출한 <윤복이의 일기> 발표를 들었던 터라, <저 하늘에도 슬픔이>가 더 절절하게 다가왔다. 이후 2014년 1월 6일에서 10일까지 다시 대만 영상자료원을 방문해 린 웬치 교수, 그리고 대만 자오퉁대 얼 잭슨 교수와 함께 타이베이 시 외곽에 있는 필름 수장고를 찾아, <저 하늘에도 슬픔이> 네거티브 프린트를 확인했다. 필름은 매우 좋은 상태로 보였다. 문 밖으로 아열대의 나무들이 보이는 수장고 안에서 1965년 듀프 네거티브 필름을 확대경으로 확인하는 과정은 미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린 교수는 중국어 제목이 시적으로 매우 잘 지어진 것이라는감상을 전했다.

이후 한국영상자료원의 노력으로 이 듀프 네거티브 필름이 현상되어 우리 앞에 오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이 글은 에 실린 글 ‘Cartography of Catastrophe’의 논점의 일부를 <아리랑>의 유령 정전 문제로 확대한 것이다. 영어로 쓰인 글을 번역했다. <아리랑>의 팬톰 시네마로서의 위상을 문제화하면서, <아리랑>에서 확인된 조선 영화의 관객, 그 관객들의 선사(pre-history) 로서의 ‘만민’의 등장과 스크린 프랙티스를 다루고 있다.

01 Slavoj Zizek, Enjoy Your Symptom!, 슬라보예 지젝,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할리우드의 정신분석> 주은우 역, 한나래, p217
02 한국예술종합학교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연구소의 권용숙 연구원이 자료조사를 맡았다. 아울러 하승우, 강진석, 주은정, 김정구, 배강범 연구원들의 노고에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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