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속에 잊지 못할 영화 속 악당이 한 명씩은 있다. 한국영화에는 주인공보다 매력적인 수많은 조연배우가 있는데, 그들은 대개 악역이었다. 이번 기획전은 필름 누와르와 갱스터물, 공포 그리고 멜로 치정극 같은 장르영화 안에서 우리를 강렬하게 사로잡은 악인들의 영화들을 모아봤다.
먼저 모두가 악당인 필름 누아르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임권택의 <사나이 삼대>는 장동휘, 박노식, 김희라로 이어지는 건달 세계에서, 폭력의 역사를 끊어내려는 김희라의 악전고투를 냉소적이고 어두운 구도 속에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또 박노식 감독의 독특한 괴작 <악인이여 지옥행 특급 열차를 타라>는 맹인 박노식의 비장한 행보가 영화의 경쾌한 리듬 속에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가 4명의 악인에게 ‘지옥행 특급열차권’을 선물하는 복수의 과정이 기상천외하다. 그리고 <명동잔혹사>에 이르면 악당의 비장한 라스트 신을 만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명치전’ 시절부터 ‘서울의 심장’인 명동은 지친 얼굴의 악당이 마지막으로 다다르는 숙명적인 장소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말은 <월하의 공동묘지>의 욕망의 화신 도금봉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무시무시하기는 이예춘도 만만찮은데, <공포의 이중인간>에서 끊임없이 산 사람을 실험대에 눕히는 탐욕스러운 과학자 등 악역 전문 배우답게 그의 연기는 강렬하다. 최민수 역시 <피아노맨>의 의문의 연쇄살인마로 등장해 특유의 카리스마로 악인에 대한 공포를 극대치까지 끌어올린다. 마지막으로 치명적이지만 매혹적인 나쁜 남자와 나쁜 여자들이 등장하는 치정극들을 놓치지 말자. 특히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의 멍한 듯 서늘한 오수미의 얼굴과 <손톱>의 열패감과 분노로 미쳐가는 진희경의 얼굴은 오래 기억될 만하다.
악당 곁에는 늘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있다. 그들이 악랄할수록 갈등은 고조되고, 몰입도는 높아진다. 비열한 배신, 걷잡을 수 없는 광기, 가슴을 짓찧는 복수. 13편의 장르영화 가운데 한국 영화 최고의 악인이 누구인지 가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