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영화 작업의 불능이 이를 타개하는 고육지책의 저항적 미학을 만드는 법이다. 영화감독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이른바 영화의 ‘멸종 선언’으로 읽히지만 감독 본인이 옥상에서 지상으로 뛰어내릴 때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만 하는 것은 그의 죽음이 아닌 몸짓에 실린 에너지다. 그는 출구 없는 옥상에서 열린 광장과 세계로 몸을 내던지는데, 이 도약의 몸짓은 당대의 권력과 중력에 맞서는, 무엇보다 영화의 규범을 넘어서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이어지는 동칠이의 이상한 나라의 모험은 당시 권력이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활용한 섹스, 스크린, 스포츠의 3S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이다. <바보선언>의 탁월함은 무기력한 인물들이 벌이는 모험이 완전히 다른 반박의 역량을 만들어낸다는 점에 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무성과 유성영화의 혼종, 전자음향과 국악의 소리들이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이질적인 이미지들이 뒤섞인 영화. 무엇보다 영화 멸종에 대한 반박의 역량은 삼인조 어릿광대들이 벌이는 저항의 제스처에 있다. 때론 거친 생명력으로, 때론 음향적 몸짓으로, 때로는 제의적 몸짓으로, 최종적으로는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사회적 제스처의 파괴적 역량은 내러티브의 비극을 넘어선다. 영화 멸종의 사회적 정황을 이토록 진지하게 받아들여 작가가 극한의 지점까지 영화를 끌고 가 파괴적인 이미지들을 만든 예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 만큼 고귀하고 독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