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미의 얼굴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처음 알았다. 또 목소리가 그렇게 거칠거칠한 것도 처음 알았다. 기자 초년 시절, 서울극장에서 영화 <티켓>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한국영화, 이런 이야기도 가능하구나! <티켓>은 여자들 이야기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며’ 우리 사회의 맨 밑바닥으로 내팽개쳐진 여자들의 멜로드라마다. 그런데 그 멜로의 틀 안에서 영화는 묻는다. 이 여자들의 삶을 망가뜨린 것은 무엇(누구)인가! 민마담(김지미)은 소위 티켓 다방 사장이다. 종업원들이 “팬티 한 장 사러 외출해도 커피 석잔 값을 물어내”게 할 정도로 돈에 야멸친 그는 선불금이 빚으로 불어나 오도 가도 못하는 미스 조, 영화배우가 꿈인 미스 양, 성깔 있는 미스 홍, 그리고 풋내 나는 초짜 세영을 데리고 바닷가 작은 도시에서 사업을 꾸려간다. 사연이야 제각각이지만, 커피 배달 나가 몸 팔고 오는 여자들이 돈에 목매는 이유는 하나.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 돈이고 몸이고 아낌없이 내어줬지만 “더럽혀졌다”는 이유로 가장 낮은 곳에 내몰린 설화적인 여성 원형들이다. 선불금 30만 원 번 돈으로 지지리도 못사는 시골 아버지 회갑(!) 잔치를 벌여주고, 불구인 오빠 장가들도록 밭 한 뙤기 사주겠다고 약속하는 세영이는 20세기의 바리데기이고 심청이고 평강공주이며 판틴이다. 그러나 설화 속 주인공들과 달리 이 여자들 누구도 영광스러운 보상을 받지 못한다! 민마담이 세영을 버린 애인을 한사코 바다 속으로 밀어 넣을 때, 정신 줄을 놓아버린 민마담이 가슴에 품은 달걀(탁구공)을 내밀 때, 설화는 현대의 잔혹사로 다시 살아난다. 27년 전에 본 이 영화의 인상은 지금도 선연하지만, 세부 묘사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DVD 출시가 안 되어 테이프 감기는 소리가 태풍처럼 들리는 VHS로 다시 보았다. 표독에서 무심함, 분노, 좌절을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40대 김지미의 연기는 다시 보아도 정말 일품이다. 가부장 사회와 여성 착취에 대한 처절한 고발이자 여성의 (실패한) 저항을 담아낸 이 영화는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 영화가 끝난 지점에서 우리는 얼마나 전진해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