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기사 대 녹음하는 가수 당대 최고의 파란만장 인생을 살다 가수 겸 녹음기사, 손인호

by.이준희(대중음악비평가) 2013-06-12조회 1,224

어떤 분야이든 거기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아가 여러 가지 분야에서 동시에 모두 일가를 이루기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또 그 어려운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이들이 종종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오랫동안 대중문화의 주요 축으로 존재해온 영화와 대중가요 두 분야에서 모두 주목할 만한 자취와 업적을 남긴 이들도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예라면 가수 겸 배우로 활약한 최무룡 같은 이를 꼽을 수 있을 텐데, 그처럼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오히려 더 주목할 만한 인물이 바로 손인호다(생존해 계신 큰 어른이시기는 하나 글에서는 경칭 생략).

우선 순위 없는 다작 인생을 살다

한 인물의 평생을 총괄해서 이력을 정리해보면 대개는 대표 직함이 하나 떠오르게 마련이다. <딸 칠형제> 같은 영화를 만든 감독이기도 했던 박시춘은 그래도 역시 작곡가이고, 가수로서는 좀 아쉽기는 하지만 최무룡은 아무래도 배우가 우선이다. 그에 비해 손인호라는 인물은 대표 직함을 정하기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곤란하다. 노래 잘하는 기사로 보는 것이 좋을지 녹음 잘하는 가수로 보는 것이 좋을지, 간단치가 않다. 영화 쪽에서는 물론 녹음기사로 보는 입장이 우세할 것이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물경 2000편 정도의 영화 녹음을 맡았다고 하니, 일단 양적으로 더 따져볼 것이 없다. 그저 오랫동안 많은 작품을 한 것만도 아니니, 각종 영화제 수상으로 공인된 실력과 공적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녹음한 그 많은 영화를 본 수많은 관객 가운데 손인호라는 존재를 인지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중가요 쪽에서는 당연히 인기 가수로 보는 입장이 우세할 것이다. 이미 1940년대 후반 당대 최고의 공연 단체였던 K.P.K악단 무대에서 데뷔해 1950년대 중반부터 약 10년 동안 ‘비 내리는 호남선’ ‘해운대 엘레지’ ‘한 많은 대동강’ 등 허다한 히트곡 음반을 발표하며 절정의 인기를 누린 가수가 손인호였다. 빼어난 미성에 수려한 외모까지 갖추었으니, 녹음의 방해(?)만 아니었어도 실로 ‘제2의 남인수(南仁樹)’가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짙다.

지금도 가수 손인호의 노래를 듣고 부르는 대중은 그를 당대 최고의 가수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양쪽에서 모두 두드러진 활동을 한 인물답게 손인호가 발표한 노래 가운데에는 대중가요와 영화의 접점에 있는 영화주제가가 상당수 있다. <전후파>(1957) 주제가인 ‘내일이 없는 사랑’, <진주는 천리 길>(1958) 주제가인 ‘원철의 노래’, <눈물>(1958)의 주제가인 ‘영환의 노래’, <모녀>(1958)의 주제가인 ‘어머니의 노래’, <그대는 돌아왔건 만>(1958)의 주제가인 ‘영호의 노래’, <언젠가 어머니라 불러다오>(1963) 주제가인 ‘남매의 노래’, <상해의 밤>(1963) 주제가인 ‘그 님은 어느 곳에’, <동백 아가씨>(1964) 주제가인 ‘돌아가자 남해 고향’ 등이 현재 확인되는 손인호의 1950~60년대 영화주제가다. ‘○○의 노래’가 많이 보이는 데에서 당시 영화주제가의 통상적인 제목 붙이기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아쉽게도 영화이든 주제가이든 크게 히트한 경우는 없지 싶은데, ‘돌아가자 남해 고향’ 정도는 같은 영화의 또 다른 주제가이자 같은 음반에 수록되었던 이미자(李美子)의 ‘동백 아가씨’가 공전의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인지 그런대로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인기 가수와 녹음기사 사이

앞서 박시춘이나 최무룡의 예를 들기도 했지만, 영화와 대중가요 두 분야에서 모두 활동한다 하더라도 실제 작품이 중첩되는 경우가 많다. 박시춘이 <딸 칠형제>의 감독을 맡는 동시에 주제가 작곡도 함께 하고, 최무룡이 <꿈은 사라지고> 주제가를 부르는 동시에 영화 주연도 함께 맡는 식이다. 그렇게 보면 손인호의 영화주제가에서도 역시 그러한 중첩이 나타날 법한데, 어쩐 일인지 실제는 또 그렇지가 않다. 위에서 거론한 영화 중 손인호가 녹음 기사와 주제가 가수로 함께 참여한 것이 확인되는 작품은 <모녀> 한 편뿐이다. 관련 자료가 온전히 다 발굴되지 않았으므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인기 가수 손인호와 녹음기사 손인호 사이의 경계가 그 나름대로 뚜렷했던 모양이다. 원로 가수 상당수가 말년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과 달리 넉넉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녹음기사 손인호의 기여가 컸다고 하겠고, 아흔을 목전에 둔 지금도 자신의 히트곡만으로 꾸민 한 시간짜리 쇼에 출연해 노래를 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인기 가수 손인호의 몫도 만만치 않다. 기사와 가수의 팽팽한 대결은 판정하기 난감한 과제인 동시에 과거 대중문화의 자취를 더듬는 후인(後人)에게는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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