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한국영화계의 불황과 맞물려 호스티스・에로 영화가 범람하던 시절, 배우 정윤희는 시대의 변화 속에 훼손당한 누이이자 남성들에게 착취당하는 약자로 소비돼왔다. 그런 면에서 이형표 감독의 <아가씨 참으세요>는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다소 돌출된 영화다. 정윤희는 코믹 권격 영화를 표방한 이 영화에서 특유의 해사한 미소와 웃음으로 치근덕거리는 남자에게 발차기를 날리며 온갖 방법으로 악당들을 골탕 먹이는 철없는 부잣집 딸로 출연한다. 권격 전문 여배우 서영란과<사망유희>에서 이소룡 대역을 맡았던 당룡과 함께 악당들의 음모에 맞선 정윤희의 발랄한 모습은 극적 개연성과 만듦새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색다른 웃음과 즐거움을 안겨준다. 사진은 정윤희가 악당 퇴치를 위해 태권도장에서 호신술을 연마하는 장면. <언니는 말괄량이>(한형모, 1961)에서 문정숙이 유도복을 입고 남자들을 엎어치며 의외의 모습을 선보였던 것처럼 태권도복을 입은 정윤희의 깜찍한 모습이 그저 사랑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