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극장은 영화 <친구>(곽경택, 2001)에 등장하면서 아직도 기억되는 부산의 2본 동시상영관으로 올라섰지만 온천장의 변두리에 서 있는 동성극장은 이제 거의 완전히 잊히다시피 했다. 동성극장은 유흥가 온천장의 자기장 안에 간신히 들어가 있었고 살짝 멀리 부산대학교, 근처에는 수많은 중고등학교가 모여 있어 풍부한 타깃 오디언스(target audience)를 확보한 극장이었다. 재개봉관도 아니고 3번관도 아니며 2본 동시 상영관임에도 2층 구조에 대형 스크린을 갖춘 데다 그 레퍼토리 역시 대단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세르지오 레오네, 1984)와 < LA 용팔이 >(설태호, 1986)를 붙여 ‘갱스터 특별전’을 한다거나 <천녀유혼>(정소동, 1987)과 <옹기골 뽕녀>(김수영, 1987)를 동시 상영해 오로지 <천녀유혼>을 보고자 극장을 찾은 소년들에게 리비도의 급성장이라는 뜻하지 않은 선물을 하기도 했다.
‘흥행 대작과 성인물을 컬라보레이션’하는 마케팅 기법은 동성극장을 상징하다시피하는 레퍼토리였는데 <플래툰 Platoon>(올리버 스톤, 1986)은 <무릎과 무릎 사이>(이장호, 1984)와 함께, <에이리언 2 Aliens>(제임스 캐머런, 1986)는 <몸 전체로 사랑을 2>(홍파, 1986)와 함께 상영하는 식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당시 소년들은 이 극장을 ‘DS문화센터’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바꿔 불렀다. 동성극장은 시내 개봉관이 2000원 정도의 입장료를 받던 시절 500원의 요금을 받았다. 500원으로 영화 두 편을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초대형 TV를 설치해놓고 불법 비디오를 상영하던 휴게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또 1.5층이라고 부르던 중간층에는 ‘수면실’까지 있어 학교를 ‘땡땡이’ 친 학생, 외근을 나왔다가 시간을 때워야 할 직장인, 갈 곳 없는 백수 등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휴식의 공간이었다. 그 의미심장한데다 과감하게까지 느껴지는 극장 이름답게 옆자리의 모르는 소년들의 허벅지에 손을 척 얹어놓고 영화를 관람하던 아저씨들이 출몰했던 곳이기도 하다. 동성극장 사상 최고의 해프닝은 <영웅본색> (오우삼, 1986)을 상영할 때 일어났다. 사실 그곳에서 <영웅본색>을 이전에도 상영한 적이 있어 왜 또 상영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어쨌든 명작이기 때문에 다시 관람하러 극장을 찾았다. 절대로 함께 상영했던 <빨간 앵두 3>(박호태, 1986) 때문은 아니었다. 어쨌든 두 편의 영화를 모두 감상하고도 시간이 남아 불법 비디오를 상영하던 휴게실에 들른 순간 나는 전율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곳에서는 놀랍게도 <영웅본색 2>(오우삼, 1987)를 상영하고 있었다. 아마도 동성극장의 당시 프로그래머(?)가 아직 한국 개봉을 하지 않은 <영웅본색 2>의 불법 비디오를 손에 넣었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미성년자가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도 불법, 해적판 비디오로 개봉조차 하지 않았던 영화를 극장에서 비디오로 상영하는 불법, 온갖 불법이 난무했지만 즐거웠던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