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혼자 본 영화는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잠실 롯데시네마에서 본 <사랑과 영혼>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며칠 동안 그 감흥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더 이상 실존할 수 없는 주인공 패트릭 스웨이지가 흐릿한 형체의 영혼들 속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은 잊히질 않았고, 데미 무어의 두려움 가득한 눈빛과 짧은 머리를 떠올리면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길거리에서 산 최신 팝송 테이프에 수록된 ‘언체인드 멜로디(Unchained Melody)’의 가사를 한글 발음으로 옮겨 적고 수없이 따라 불렀다. 아마 그때쯤부터 중성적인 매력을 지닌, 짧은 머리의 여자에게 로망을 품었던 것 같다.
그날 혼자서 잠실에 갔던 것은, 그 안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일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잠실역 만남의 광장 분수대에서 롯데월드로 이어지는 지하상가는, 천호동 구사거리까지가 세상의 전부였던 내게 별천지와 같았다. 대리석이 깔린 매끈한 바닥과 밝은 조명, 진품을 진열해놓은 깔끔한 상점들, 여러 대의 TV를 붙여놓은 멀티 전광판, 미지의 세계로 입장하는 것 같은 놀이공원의 매표소…. 친구들 사이에서 “롯데월드 가봤어?”라는 말이 돌 정도로 그곳은 신세계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휘황찬란함이 좋았다. 아직 대형 쇼핑몰과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전이었다. 그리고 그 지하상가는 잠실역 주변의 중산층 범생이들보다는, 좀 논다는 애들이 또래 여자애들과 어울리기 위해 모이는 명소가 되었다. 나도 그 속에 몇 번 끼었다. 하지만 그날은 혼자서 지하상가를 몇 바퀴나 돌았고, 우연히 포스터를 발견하고 극장 안으로 향했다. 14세 소년이 관람할 수 없는 영화였다는 점도 금지의 욕망을 부추겼다.
그 일을 계기로 혼자서 영화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극장에 불이 꺼지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 영화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올 때의 묘한 쓸쓸함은 혼자 있을 때 배가되었다. 나는 상황에 따라 극장을 달리 선택했다. 데이트할 때는 잠실의 롯데시네마에서, 혼자일 때는 주로 동네 재개봉관을 찾았다. 집과 가까웠던 천호극장은 영화를 보면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고, 극장 안에 죽치고 있어도 뭐라고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문화학교 서울이라는 시네마테크를 만나기 전까지 내 영화 인생의 사춘기는 그렇게 흘러갔다. 그 뒤로도 수없이 잠실역을 드나들었지만 한 번도 롯데월드 안으로 들어가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