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세 감독의 영화에 언제나 등장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꿈의 이미지다. 그의 2007년작 은 데뷔작 <개그맨>에서부터 그를 사로잡고 있는 꿈을 영화의 속성과 연결시키는 가장 야심 찬 프로젝트였지만, 시장에서 도태되고 말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지닌 가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대중과 접속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영화를 이끄는 주체적 시선의 불분명함일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 주인공 민우의 꿈, 혹은 몽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몇몇 미스터리한 이미지가 있다. 때때로 어떤 장면에서 민우는 꿈의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가 꾸는 꿈의 대상인 것처럼 존재한다. 예를 들어 영화의 중반부에 갑자기 민우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물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혹은 민우와 은혜가 머무는 아파트에서 그들이 끊임없이 의식하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은밀한 시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꿈의 주체인 동시에 대상이며,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모든 이야기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의도적으로 흐려져 있다. 그럼으로써 은 결국 꿈으로서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미미의 꿈 이 영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시선은 죽어 있는 미미의 눈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우리는 빗물에 비친 몇 장의 낡은 사진과 죽은 미미의 눈을 본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에서 하나의 가설이 세워진다. 어쩌면 에서 전개되는 모든 이야기는 미미가 꾸는 꿈이 아닐까. 만약 이 이야기가 미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에 대한 열망이 만들어낸 꿈이라면, 이는 유령의 시선이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시선을 가정할 때, 역설적으로 에서 민우와 은혜가 느끼는 보이지 않는 시선의 주체가 규명될 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지배적인 이미지들의 원류 또한 유추가 가능해진다. 민우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보는 실체 없는 시선을 느낀다. 그것은 은혜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머무는 아파트의 공간은 민우가 때때로 배회하는 골목길만큼이나 어둡고 모호하며, 민우와 은혜는 그 공간 안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를 느끼고 매번 움츠러든다.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거울의 이미지는 죽기 직전 미미가 최후로 보았을 콘크리트 바닥에 고인 물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물속에 너울거리며 비치는 민우의 빛 바랜 사진들이 이 모든 꿈의 시초일 수 있다. 미미가 쓰러진 바닥에 고인 물은 반들거리는 유리처럼 보인다. 이는 루팡 바의 반질거리는 스탠드바와 술 진열장으로, 미미와 민우가 헤매고 다니는 골목 안에 놓인 거울로, 마치 유리로 만들어진 듯한 민우의 아파트 공간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미미가 기억하는 최후의 이미지인 비와 우산의 모티프는 더욱 확실하게 등장한다. 미미의 뒤를 쫓는 우산을 든 정체불명의 사나이, 우산을 든 루팡이 그려진 루팡 바의 간판, 영화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민우의 머리 위로 사정없이 쏟아지는 물, 영화의 후반부에서 지하철을 타고 강을 건너가는 미미의 모습은 모두 미미의 마지막 의식의 편린에서 솟아나온 이미지들이다. 비 내리는 밤거리, 빗물에 비친 네온사인의 이미지는 불규칙적으로 번쩍이는 루팡 바의 간판, 그리고 오프닝 시퀀스에서 보이는 영화의 제목인 ‘M’의 네온사인을 닮은 타이포그래피와 연결된다.
민우의 꿈
그러나 한편으로 내러티브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이 영화에서 꿈의 주체는 당연히 민우다. 알맹이 없는 삶으로 인해 창작의 한계에 부딪힌 민우는 꿈속에서 잊어버렸던 첫사랑의 기억과 조우한다. 영화 속에서 되풀이되는 민우가 꿈을 꾸고 깨어나는 장면으로 인해 이 영화에서 꿈과 현실의 경계는 지워진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가, 혹은 어디까지가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가. 꿈속에서, 혹은 상상 속에서 미미는 민우의 창작 욕구를 자극하는 뮤즈이며, 그가 점차 되살려내는 첫사랑의 기억은 어쩌면 가공된 것일지도 모른다. 민우가 질투심에 휩싸인 은혜에게 이야기하듯, 미미는 민우의 꿈속에 나타난 소설 속 여주인공일 수도 있다. 은혜가 민우에게 해묵은 감정을 토로하고 격렬하게 사랑을 구하는 장면에서 미미와 은혜는 모습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겹쳐진다. 어쩌면 미미는 은혜의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민우가 떠올려낸 가공의 인물일지도 모른다. 민우와 미미 사이에 일어난 모든 이야기가 민우의 소설이라면, 은 한 소설가가 꾼 백일몽, 혹은 영화 속 영화와 같은 액자 구조로 이해될 수도 있다.
은혜의 꿈
그러나 꿈을 꾸는 것은 민우 혹은 미미만이 아니다. 민우의 약혼녀 은혜도 꿈을 꾼다. 그녀의 꿈속에서 민우는 때로 전혀 다른 사람처럼 은혜를 쳐다보고 그 낯선 기운에 은혜는 공포에 질린다. 그녀 또한 꿈에서 깨어나서도 꿈과 현실을 온전히 구분해내지 못한다. 민우와 마찬가지로 은혜에게도 아파트는 때로 끝을 알 수 없는 미로와 같은 공간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결말로 느껴지는 마지막 호텔 장면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어떤 공간 못지않게 비현실적이다. 이국적인 옥빛 바다, 마치 그림처럼 음식이 담긴 카트를 끌고 등장하는 행복해 보이는 은혜, 한 폭의 풍경화처럼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정답게 백사장에 앉아 있는 둘의 모습은 한편으로 너무도 평화로워보여서 기이하기까지 하다. 이는 어쩌면 창작의 고통을 겪는 예술가를 연인으로 둔 평범한 여인의 몽상이 아닐까. 은혜는 민우를 미행하다가 놓치고 지하철 역에 나란히 서 있는 미미와 조우한다. 미미의 존재는 평생 아내가 아닌 자신만의 예술적 뮤즈를 품고 살아갈 남자와 맺어지기로 결심한 여인의 불안감이 만들어낸 환영이 아닐까.
영화 – 관객의 꿈
다중적인 시선, 다중적인 주체를 받아들이는 순간 은 필연적으로 거대한 꿈으로서의 ‘영화’를 향해 나아간다. 민우와 미미가 조우하는 ‘루팡 바’의 마법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루팡 바에서 산 자와 죽은 자, 과거와 현재는 시공간의 장벽을 넘어 서로 조우한다. 이는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십수년 전의 과거에 머물러 있는 유령과 복잡한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을 이어주는 끈은 ‘이야기’ 다. 민우는 미미에게 머릿속에서 뱅뱅 돌던 이야기를 풀어내고, 미미는 울고 웃으며 이야기를 듣는다. 영화와 관객 또한 시공간을 넘어 사각의 스크린에서 조우한다. 루팡 바는 관객과 영화의 만남을 마침내 성사시키는 스크린, 혹은 극장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하여 이명세 감독의 은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이 꾸는 꿈의 상연장으로서의 영화에 대한 매혹적인 연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