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자료원에서 기간제 계약직으로 2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영상자료원’은 영화를 공부하거나 보는 공간, 영화를 보존하는 공간이 아닌 전 직장 혹은 일터의 느낌이 강하다.
영상자료원에 입사했을 때 부모님이 무척 좋아하셨다. 졸업작품으로 만든 내 영화를 보며 주무셨던 부모님은 하루라도 빨리 영화를 그만두고 직장 생활을 하기 바라셨다. 운이 좋게 영상자료원에 취업이 되었고, 첫 월급을 받아서 부모님께 약간의 돈을 드렸다. 피곤한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던 당신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자신의 꿈을 지키며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과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으며 주변 사람들과 소박하게 사는 것, 영화 일을 하는 대다수 청춘이 하는 고민을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시작했다. 그전까지 좋은 영화감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영화 현장 한 귀퉁이를 지키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안정적으로 나오는 월급을 받고 지내다 보니 어느 새 1년 6개월의 시간이 훌쩍 지났고, 매달 들어오는 월급의 유혹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은 자유롭지 못했다. 그 사이 영화를 만들겠다는 예민함과 고집도 조금씩 무뎌졌다. 좁은 편집실에서 랜더링 완료 시간을 기다리며 멍하게 앉아 있던 어느 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퇴직금이 앞당겨 나오자 바로 단편영화를 찍었다. ‘내가 또 무슨 일을 벌이고 있나’ 이런 생각이 정리될 때 즈음 1년 10개월의 퇴직금은 15기가 MOV 파일로 변해 있었고, 기간제 계약직 계약기간 2년 만료로 영상자료원을 떠났다. 회사를 떠나는 날, 짐을 가지고 걸어가는 길에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2년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
나에게 영상자료원은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생활의 고민’을 하게 된 곳이다. 지금도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좋은 영화, 다른 영화를 만들기 위해 배우고 있는 지금에 감사하다. 물론 영상자료원에서 일한 2년 역시 소중하고 감사하다. 그곳에서 만난 직원들과 사회 경험, ‘안정’이라는 착각 속에 드는 여유, 기간제 계약직의 불안함, 기획전 영화 등등은 앞으로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데 소중한 바탕이 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