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위, <생활의 발견>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는 VHS테이프가 눈에 들어왔다. ‘나의 사랑 나의 영화’ 원고 청탁을 받고 어떤 한국영화를 선택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던 중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던 VHS 테이프들에 눈길이 갔고 순간 한눈에 쏙 들어온 이 영화.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던 때가 머릿속에 잠시 스친다. 영화를 보던 내내 낄낄대고 있던 나. 옆 사람이 째려보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그렇게 낄낄대며 영화를 보던 난 동시에 왜 이 영화가 이렇게 관객인 나(극중 이야기에 속해 있지도 않은 나)에게 창피함과 얼굴의 화끈거림을 주는지 도통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후에 느낀 바는 이렇다. 영화 속 주인공의 남성성(인간남자 수컷의 어떠한 성질)에 대한 낯간지러움, 익숙한 환경 안에서 벗어나 일탈해버린 공간성과 시간성 안에서 그저 본능에 충실한 행동을 행하는 주인공의 모습, 극의 상황 안에서 남성 주인공의 비루해 보이는 모습이 마치 어느 시간대 어느 상황 속 나와 꽤 닮아 있다는 것 때문. 마치 극 속의 주인공이 나고 내가 바로 극 속의 주인공인 듯한 느낌이랄까. 극중 등장하는 여성들의 쪽지 내용인 ‘내 안의 당신, 당신 안의 나’ 라는 문구마냥.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가 개봉하는 족족 즉시 달려가 찾아보는 나. 극장 안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 불이 밝혀지는 순간, 나의 마음은 어느새 ‘다음 작품은 언제 만들어주시려나’ 하는 아쉬움으로 채워지기 바쁘다. 하지만 그런 바튼 기다림을 어루만져주듯 어느새 또 홍 감독님은 새로운 작품을 들고 나와주신다. 그러면 난 또 허파에 기대감을 가득 담고 극장으로 달려가, 영화가 어서 스크린에 영사되기를 기다린다. 마치 다운받고 있는 ‘야동’이 어서 100%의 다운로드를 기록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홍 감독님, 힘드시겠지만… 아니지, 영화 만드는 게 재미있으실 테니 부탁드립니다. 매년 쉬지 마시고 계속 영화 만드셔서 저희가 쉽게 지나쳐버리는 생활을 다시 발견할 수 있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