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묵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줄탁동시>(HD/color/117min/2011)를 지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보았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영화였고, 무사히 완성되기를 바란 영화였다. 마치 내 영화라도 되는 것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극장 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영화는 시작되었고… 나는 반쯤 넋을 놓고 보았다.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언제나, 외딴곳에 버려진 외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실내에 갇혀 있거나 부유하는 인물들, 채워지지 않는 욕망, 슬픔을 머금은 춤, 현실과 환상의 넘나듦, 탈출하려는 몸부림, 불길한 엠비언트 사운드, 숨 막히는 섹스…. 이전 작업들에 비해 이야기는 더 풍부해졌고, 배우들의 연기를 끌어내는 솜씨도 한층 노련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진화하는 동료를 바라보는 경이와 부러움이 한데 섞였다. 상영이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를 맡은 평론가도 벅찬 표정으로 그를 소개했다. 재능 있는 소년에서 원숙한 청년으로 성장한 김경묵이 무대에 등장했다.
1년 전 겨울, 나와 아내는 김경묵 감독의 호출을 받았다. 편집 막바지에 다다른 <줄탁동시>의 모니터링을 위해서였다. 그는 지난한 작업에 지쳐 있었고, 기력도 돈도 모두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함께 본 편집본은, 지금껏 그가 만들어온 영화 가운데 최고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영화가 완성되었다. 나의 기대처럼, 의미심장하고 아름다운 영화였다. 무대에 선 그는, 이제 혼자 작업하는 것보다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것이 더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혼자 시작했지만, 영화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과 친구들을 만났을 것이다. 껍질을 깨고 나온 자의 깨달음. 줄탁동시(啐啄同時). 영화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거라 생각했고, 그런 의미에서 그의 영화들은 내게 큰 자극이 되었다. 그는 자신을 부수면서 나아간다. 나는, 나를 둘러싼 알을 깨고 나갈 수 있을까. 며칠 뒤면 그도, 편집 중인 내 영화를 보러 올 것이다. 이번 영화를 통해서, 나는 어떤 배움을 얻을 수 있을까. 그가 나의 새 영화를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 (추신. <줄탁동시>는 2012년 3월 1일 극장 개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