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울서울]서울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또 다른 산책자를 기다리며 서울을 인상적으로 그려낸 감독들

by.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2012-03-12조회 2,181
서울이 서울이 된 것은 광복 이후의 일이다. 그전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부였으며 그보다 더 이전에는 조선시대 태종이 개성에서 수도를 옮기면서 한양이라고 불렀다. 이 도시는 수도 구실을 한 지 500년이 넘었으며 이후 수없이 수도 이전설이 정치적으로 혹은 행정적으로 이야기되었지만 여전히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다. 서울을 영화로 찍는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현재를 기록한다는 의미다. 다소 단정적으로 말한다면 이 도시의 시간은 언제나 이 나라의 현재 시간이 되었다.

이 도시에서 벌어진 사건, 이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이 도시에서 진행되는 정치적인 결정, 혹은 경제적인 분할과 통합이 만들어내는 일상생활, 새로운 유행, 삶의 새로운 패턴, 새로운 지리학, 재빠른 파괴와 건설, 끊임없이 마주치는 낯설고 새로운 건물. 서울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은 금방 전국적인 것으로 확장되어나갔다. 하지만 그 역은 성립되지 않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곳으로 빨려들어오듯이 상경하고 있으며, 그래서 누군가는 풍자적으로 한국에는 두 개의 나라가 있는데 하나는 서울이고 다른 하나는 나머지 전부라고 했다.

두 개의 삶, 하나의 도시
한국영화는 서울에서 영화를 찍을 때 서울을 담으려고 한다. 이런 표현을 허락한다면 한국영화에는 ‘서울영화’라는 장르가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마치 프랑스영화에서 파리영화처럼, 혹은 미국영화에서 뉴욕영화처럼, 일본영화에서 도쿄영화처럼, 한국영화는 서울영화를 발명했다.

그러나 서울은 1945년 직후의 로마가 아니다. 나는 이 도시에서 만들어진 한국영화를 보면서 단 한순간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같은 풍경의 연대의식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를테면 1961년을 생각해보자. 나는 지금 두 명의 감독을 생각하고 있다. 유현목의 <오발탄>은 서울 시내를 쏘다니면서 찍은 영화다. 1960년 서울은 판자촌과 직사각형의 빌딩으로만 이루어진 도시처럼 보일 정도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우울함. 거의 걷잡을 수 없는 빈곤은 점점 모든 인물을 미쳐가게 만들고 그들은 모두 파국을 맞이한다. 그런데 같은 해에 만들어진 김기영의 <하녀>는 빈곤을 잊은 채 서울에서 벌어지는 실내극의 풍요롭지만 폐쇄적인 부르주아 공간 안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식모라는 (이제는 필리핀 혹은 연변에서 온 조선족으로 대체된) 직업. 서울과 지방 사이 부가 편중되게 분배되는 모순 속에서 작동되는 노동시장. 김기영이 빈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 영화를 보고 있으면 여기에는 마치 두 개의 서울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두 영화의 삶의 공간은 멀리 떨어져 있다. 핵심은 그것이 서울이라는 것이다. 두 개의 삶, 하나의 도시. 서울에서 우리들은 결코 서로의 삶을 공유해본 적이 없다. 모두는 각자의 토대 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서울을 산책하는 사내
언제나 서울은 대한민국에서 근대의 한복판이었다. 서울을 거닌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던한 ‘대한민국을 둘러보는’ 산책이 되었다.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느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만희는 그것을 느껴보고 싶어 했다. 그의 영화는 서울을 자주 떠났지만 금방 종종걸음을 치듯이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휴일>은 어느 겨울날 일요일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시작한다. 남자는 돈을 빌리기 위해 서울 거리를 전전하고 여자는 병원에서 낙태를 위해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는 종로 거리에서 남산까지 올라간 다음 다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서울 거리로 내려온다. 어쩌면 이런 줄거리를 아는 것은 이 영화에 다가가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모른다. 이만희는 꼭 그런 것은 아닌데도 종종 인물을 따라가다가 그 인물을 풍경의 일부처럼 찍으면서 어떤 시적 명상에 잠기듯이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때 여기에는 줄거리의 배경으로서의 서울이 아니라 마치 서울이 담고 있는 수많은 줄거리 중의 하나를 언뜻 내비치는 듯한 어떤 전도가 일어난다. 알 수 없는 암시들. 거리 사이를 연결하는 동선들의 미로. 남자가 남산에 올라가 서울을 내려다볼 때 문득 찾아온 사나운 바람은 금방이라도 이 사내를 날려버릴 것만 같다. 지나치게 인구밀도가 떨어지는 텅 빈 공간들. 그 사이를 채우는 죽은 시간. 목표 없이 움직이는 인물.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될 때 우리는 이 사내가 산책하는 도시, 서울의 풍경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서울에서 길을 잃다
서울영화가 한국영화의 풍경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두 가지의 서로 반대되는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하나는 새마을운동과 함께 지방 근대화의 ‘개발’ 풍경이 국책에 의해서 지원받기 시작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구적인) 모던에 대한 저항의 과정에서 우리 것을 찾아가는 여행의 풍경을 통해서다. 부서져가는 전근대. 우리는 서울에서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어쩌면 거기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의 과거 속 기호들의 발견에 대한 갈망. 나는 여기서 두 명의 감독을 생각한다. 한 사람은 다시 한 번 도시의 모던에 심취한 이만희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란 이만희의 유작은 가본 적이 없는 곳으로 향하는 <삼포 가는 길>이다. 그는 마치 서울의 운명이 다한 듯, 서울의 낭만이 끝난 것처럼, 더 이상 우울해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듯이, 길에서 만난 두 남자와 한 여자를 따라서 한겨울 눈밭길을 걸어간다. 여기서 이만희는 향수에 사로잡힌다. 잃어버린 그 무엇. 내가 서울에서 잃어버린 것. 그런 다음 이만희의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정반대로 서울에서 내내 난처한 시간을 보낸 임권택은 문득 새마을 영화를 찍으면서 자기의 시간을 되찾았다. 이를테면 <아내들의 행진>. 그런 다음 그는 마을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전근대의 풍경 속에서 한국이라는 질문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족보>. 임권택은 ‘길 영화(road movie)’로 자신이 되찾은 시간의 선을 연결했으며, 그 선과 점을 잇는 한국이라는 힘과 아름다움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따금 임권택의 영화가 서울을 다시 찾기는 했지만 그는 금방 다시 공간적으로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 서울을 떠났다.

아무도 웃지 않는 서울
다시 찾은 1980년대의 서울은 풍자의 대상이 되거나 혹은 비탄으로 가득한 한숨이 되었다. 이장호, 배창호, 이명세, 장선우, 박광수의 서울. 나는 단 한 편의 영화로 이 시간을 대신하고 싶다. 정치의 계절을 통과하고 있는 서울을 우스꽝스럽게 담아낸 이장호의 <바보선언>은 거의 하나의 시대정신에 대한 기록처럼 보일 정도다. 영화라는 광학장치의 기계적 트릭을 동원한 장면들은 무거운 시대의 공기를 가볍게 가로지르며 큰 소리로 웃게 만든다. 물론 이 영화는 비극으로 끝난다. 하지만 이 슬픔은 어떤 정신적 위로도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때 서울의 거리에서는 아무도 웃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은 서울이 아니다
서울이 한국영화에서 다시 모던의 도시가 된 것은 장선우에서 홍상수로, <경마장 가는 길>에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이어질 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서울은 더 이상 이만희의 우울한 낭만을 담고 있지 않았다. 이제 이들에게 서울은 더 이상 경계가 없는 도시가 되었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어질 때, 혹은 서울에서 위성도시들로 연결될 때, 이들의 동선 사이에는 어떤 문턱을 넘는다는 감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더 이상 서울은 서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도시는 서울을 복제했으며, 이제 서울은 건물 혹은 장소의 인덱스로만 남았다. 이를테면 홍상수의 두 번의 남산(<극장전>), 혹은 김기덕의 정글과도 같은 한강(<악어>). 이제는 사라진 청계천 고가도로. 이창동의 <오아이스>.

우리는 한국영화가 서울의 뒷골목을 찍을 때 사실상 그 동네가 어딘지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박찬욱은 서울을 일본 만화영화의 무대처럼 찍어냈다(<올드 보이>). 김지운에게 서울은 장르다(<달콤한 인생>). 골목은 두렵고 미로처럼 길을 잃기 쉽다. 나홍진의 <추격자>. 서울은 그 자체로 점점 국적이 사라져가는 메트로폴리스가 되어갔다. 아무도 서울에서 서정적인 움직임을 기대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로지 물질적인 자본의 물결침이 건물들과 함께 들어서고 그 안에서 삶은 점점 제도적이 되어갔다. 한국영화는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인물, 새로운 낭만을 찾아 서울을 떠나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곽경택의 <친구>에서 시작된 새로운 로컬 영화들. 부산, 혹은 지방의 여러 도시.

다시 올 서울영화
그렇게 자기의 지리적 삶을 잃어가는 21세기의 서울은 무엇일까. 그것을 대답한 영화는 봉준호의 <괴물>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았을 때 충격을 다소 받았다. 그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이유에서였다. 한강에서 괴물이 나타난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만 벌어질 수 있다고 믿었던 사건. 혹은 도쿄에서나 나타나야 할 불가능한 대상. 가능하지 않은 일. 하지만 내 눈앞에서 벌어진 일. 이제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는 도시. 봉준호는 갑자기 서울을 새로운 차원으로 열어놓았다. 봉준호는 단지 서울의 리얼리즘 바깥으로 나왔을 뿐만 아니라 그는 서울을 역사 바깥으로 열어놓았다. 세트장이 되어버린 서울. 바로크적인 서울. 500년 역사의 끈으로 친친 묶어놓은 서울을 <괴물>은 갑자기 풀어헤친 다음 예상치 않은 결말을 내놓았다. 구해야 할 대상은 죽고, 괴물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여기에는 연민도 풍자도 없다. 대신 활극 정신이 넘쳐나고 액션 이미지들이 모든 이미지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여기가 그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라는 감각을 잊고 스펙터클을 구경했다. <괴물>은 르네 마그리트적인 의미에서 ‘이것은 서울이 아닙니다’ 라고 보여주는 서울영화다. 혹은 한국영화에서 <괴물>은 서울영화라는 장르의 마지막 영화다. 아니, 차라리 ‘괴물’이 되어가는 서울에 대한 웃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웃음에는 어딘가 모르게 슬픈 멜랑콜리가 담겨 있다. 죽은 자에 대한 애도. 나는 이 슬픔에서 서울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또 다른 산책자를 기다리게 된다. 거기서 서울영화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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