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란 지진과 같은 것이라고 상상해 보자. 크고 작은 요동을 일으키는 불가시적 힘의 존재는 분명하지만, 그 힘의 근원을 찾아 지각 밑을 답사하려는 무모한 시도는 필경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할 것이기에, 결국 우리는 이런저런 관측과 경험을 통해 그 힘의 운용 원리를 간접적으로 추론하는 데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보다 정교한 추론을 위해서는 이곳뿐 아니라 다른 곳의 요동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며 그러한 지식을 얻기 위해 우리는 이따금 여행을 떠나거나 다른 이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흥미로운 것은, 언제부터인가 그 불가시적 힘의 효과가 지진계(seismograph)에 기록된 그래픽적 형상과 수치로 환원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형상과 수치가 그 힘과 모종의 지표적 관계, 혹은 인과적 관계를 맺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지만, 곧바로 힘 자체와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그것에 대한 유일한 기호표현이라 할 수도 없다. (예컨대 우리는 요동을 청각기호로 나타내는 지진계를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우리는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와 그 변형들이 영화 자체와 동일시되거나 영화적인(cinematic) 것의 특권적 기호표현을 산출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던 역사 속에서, 지진계가 지진 자체와 동일시되거나 지진적인(seismic) 것의 특권적 기호표현을 산출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식의 전도를 본다. 하지만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시청각적 지진계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것이었고, 그런 까닭에 오늘날까지도 그것과 관련된 구성물들 상당수가 ‘영화적 인터페이스’를 위한 강력한 은유로 남아 있는 것이다.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지진계가 영화라는 지진을 감지하기 위한 유일한 장치는 아니라는 점은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나 슈클라다노프스키 형제의 비오스코프 같은 사례들이 보여주듯)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이 장치의 사용에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이들은 바야흐로 인위적인 요동을 가미해 그래프의 형상을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그런가하면 시네마토그래프의 특권에 일찌감치 의문을 품었던 이들 가운데 몇몇은, 돌이켜보면 놀랄 만큼 현명하게도, 섣불리 대안적인 장치에 눈을 돌리거나 지진과 유사한 인공적 요동을 일으키는 방법을 고안하기보다는 지진의 역량을 다시 살피는 일에 전력을 쏟았다. 가령 1930년대의 르느와르는 지진계를 활성화된 지진대로 다시 가져다 놓고 인공적 요동과 본래의 지진이 함께 빚어내는 그래프의 형상을 관찰하는 일에 몰두했다. 시네마토그래프가 영화라는 지진과 맺고 있던 비인격적 자동주의(impersonal automatism)의 관계를 다시 살피려는 시도(앙드레 바쟁)가 나올 무렵, 지진은 이미 지진대를 넘어 확산되어 지각의 곳곳을 강타하고 있었다. 이른바 ‘모던 시네마’란 가공할 대지진의 충격파에 맞서 지진계가 오작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 빚어낸 매혹적인 그래프이다.
그런데 만일 대지진의 충격파가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지진계의 임계값을 넘어선 것이라면 이 지진계는 오직 그것의 오작동을 통해서만 지진의 역량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오작동하는 지진계가 그려내는 혼란스러운 그래프 또한 지진의 형상이라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가설이었다. 이러한 가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과격한 방식으로 지진계의 ‘다른’ 사용법을 한꺼번에 제시한 이들은 2차 대전 이후 등장한 프랑스의 레트리스트(Lettrist)들이었다. 이지도르 이주의 <
타액과 영원에 관한 논고 Traité de bave et d’éternité>(1951) 및 기 드보르의 <사드를 위한 울부짖음 Hurlements en faveur de Sade>(1952) 등과 더불어 레트리즘 영화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모리스 르메트르의 <
영화가 벌써 시작되었나? Le film est déjà commencé?>(1951)를 우리 리스트의 첫머리에 둔 것은 그 때문이다. 동요하는(unquiet) 영화의 형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레트리즘은 누벨바그와 더불어 “실험영화의 두 커다란 라이벌 분파”(니콜 브레네즈)라고까지 여겨질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일찌감치 영화의 전당에 그만의 자리를 잡은 후자와는 달리 오래도록 망각 속에 파묻혀 있다 비교적 최근에야 다시 조명되고 있는 중이다.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지진계는 오직 그것의 오작동을 통해서만 영화라는 지진의 역량을 더듬을 수 있다는 과격한 주장이 제기된 이후, 이를 전적으로 수긍하거나 반신반의하거나 거부한 여러 작가들이 자기만의 길을 따라 흔들리는 대지 위를 방랑했지만, 이들이 영토와 영토를 가로지르는 방랑의 과정에서 산출된 기기묘묘한 그래프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공식적인 영화사(史)의 가장자리나 여백에 묻혀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들은 ‘실험영화’나 ‘아방가르드 영화’라는 다분히 부적절한 명명으로 인해 오해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매 작품이 그 자체로 온전히 하나의 창조여야 할 예술에서 실험이니 아방가르드니 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라는 타르코프스키 식의 비판은, 그저 특정한 종을 명명하는 이름을 그 종의 속성과 동일시해 버리는 오류에 입각해 있다. 즉, 바다표범이란 바다에 서식하는 표범이라고 간주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부적절한 명명을 바로잡기보다는 실제 그 이름이 사용되는 맥락에 적절히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 이름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영토 없는 영화들을 위한 지도: 1950년대 이후 실험영화 35선’이라는 제목의 본 코너는 한국의 영화애호가들에게 그러한 맥락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2017년 1월부터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의 본 코너를 통해 1950년대 이후 실험영화 35편에 대한 리뷰와 더불어 각각의 영화를 둘러싼 영화사적 정황, 영화집단 그리고 사조와 경향에 대한 가이드를 3주 간격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그러니 여기서 당장 1950년대 이후 실험영화의 역사를 무리하게 요약하려 들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선정 과정과 기준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나마 밝혀두어야 할 듯싶다.
본 리스트는 서울국제실험영화제 프로그래머 이행준,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교수 오준호 그리고 필자를 포함한 3인이 각각 20편씩을 추천한 후에 논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35편으로 압축해 얻은 것이다. 우리는 초기 아방가르드, 즉 무성영화 시기의 추상영화, 절대영화, 다다와 초현실주의영화를 비롯해 1940년대에 마야 데런과 케네스 앵거 등의 작가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싹튼 미국 아방가르드 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기로 했다. 루이스 부뉴엘의 <
안달루시아의 개>(1929)나 데런의 <
오후의 올가미>(1943) 등은 이제는 예술영화의 정전이 되어 세계영화사 강의에서도 흔히 다루어지곤 한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늘날의 실험영화, 보다 폭넓게는 영화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미술과 공연 등 여러 예술영역들을 가로지르며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오디오비주얼 실천들과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 할 수 있는 역사적 작업들에 주목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과 영국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실험영화의 구조적(structural)이고 물질적(material)인 전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레트리즘 운동을 비롯해 이후의 확장영화(expanded cinema) 실천을 가로지르는 퍼포먼스적 측면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점은 애초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 (35편 가운데 22편이 1960년대와 1970년대 작품들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아시아 및 한국의 선구적인 작가들에 대해서도 다루고자 했다. 이 작품들 가운데는 여전히 DVD와 블루레이, 그리고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통해 접하기 쉽지 않은 것들도 꽤 있고 영화관에서의 관람이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도 있기 때문에, 추후 한국영상자료원과의 논의를 거쳐 비정기적으로 상영 프로그램을 꾸려 관객들에게 소개할 계획도 있다.
※ 1950년대 이후 실험영화 35선 리스트 (리뷰 연재는 본 리스트의 순서를 따라 이루어질 예정임)
영화가 벌써 시작되었나? Le film est déjà commencé?
모리스 르메트르 Maurice Lemaitre / 1951년 / 프랑스
요정의 빛 Nymphlight
조셉 코넬 Joseph Cornell / 1957년 / 미국
프리 래디컬스 Free Radicals
렌 라이 Len Lye / 1958~1979 / 미국
아르눌프 라이너 Arnulf Rainer
피터 쿠벨카 Peter Kubelka / 1960년 / 오스트리아
천상과 지상의 마법 Heaven and Earth Magic
해리 스미스 Harry Smith / 1962년 / 미국
노트북 Notebook
마리 멘켄 Marie Menken / 1940~1962년 / 미국
영화를 위한 선 Zen for Film
백남준 Nam June Paik / 1964년 / 미국
순열 Permutations
존 휘트니 John Whitney / 1966년 / 미국
찢어진 오른쪽 눈을 위하여 For the Damaged Right Eye
마츠모토 도시오 Matsumoto Toshio / 1968년 / 일본
생필름 Rohfilm
비르기트 하인 Birgit Hein & 빌헬름 하인 Wilhelm Hein / 1968년 / 독일
손 Hand
유현목 Yoo Hyun Mok / 1967년 / 한국
톰, 톰, 피리꾼의 아들 Tom, Tom, the Piper’s Son
켄 제이콥스 Ken Jacobs / 1969년 / 미국
24분의 1초의 의미 The Meaning of 1/24'
김구림 Kim Ku-lim / 1969년 / 한국
한글 Korean Alphabet
김인태 Kim In Tae / 1967년 / 캐나다
도색영화 Blue Movie
앤디 워홀 Andy Warhol / 1969년 / 미국
월든 Walden
조나스 메카스 Jonas Mekas / 1969년 / 미국
초른의 보조정리 Zorns Lemma
홀리스 프램튼 Hollis Frampton / 1970년 / 미국
자신의 눈으로 보는 행위 The Act of Seeing with One’s Own Eyes
스탠 브래키지 Stan Brakhage / 1971년 / 미국
퀵 빌리 Quick Billy
브루스 베일리 Bruce Baillie / 1971년 / 미국
중심구역 La Region Centrale
마이클 스노우 Michale Snow / 1971년 / 캐나다
원뿔을 그리는 선 Line Describing a Cone
안소니 맥콜 Anthony McCall / 1973년 / 영국
룸 필름 Room Film
피터 기달 Peter Gidal / 1973년 / 영국
거울을 든 사람 Man with Mirror
가이 셔윈 Guy Sherwin / 1976년 / 영국
드림랜드로 향하는 5분 10초 Take the 5:10 to Dreamland
브루스 코너 Bruce Conner / 1976년 / 미국
원 웨이 부기 우기 / 27년 후 One Way Boogie Woogie / 27 Years Later
제임스 베닝 James Benning / 1977년/2005년 / 미국
천사 L’ange
파트릭 보카노프스키 Patrick Bokanowski / 1982년 / 프랑스
ABCD
록스리 Roxlee / 1985년 / 필리핀
화염 속의 도시 City in Flames
슈멜츠다힌 Schmelzdahin (요헨 뮐러 Jochen Muller, 요헨 렘페르트 Jochen Lempert, 위르겐 레블레 Jurgen Reble) / 1984년 / 독일
극지에서 적도까지 From the Pole to the Equator
안젤라 리치 루키 Angela Ricci Lucchi & 예르반트 지아니키안 Yervant Gianikian / 1986년 / 이탈리아
30 X 30
장 페이리 Zhang Peili / 1988년 / 중국
미디어 매지카 Media Magica
베르너 네케스 Werner Nekes / 1986년 / 독일
외부공간 Outer Space
피터 체르카스키 Peter Tscherkassky / 1999년 / 오스트리아
더블 타이드 Double Tide
샤론 록하르트 Sharon Lockhart / 2009년 / 미국
데카지아 Decasia
빌 모리슨 Bill Morrison / 2002년 / 미국
안더스, 몰루시아 Differently, Molousia
니콜라 레 Nicholas Rey / 2012년 / 프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