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술자리에서 우연히 여균동 감독과 마주쳤다. 좋아하는 감독을 실제로 보니 너무 반가워 나는 고백했다. “저, <세상밖으로> 열아홉 번 봤습니다.” “시간이 많았나보죠?” 그는 특유의 짙은 눈썹을 살짝 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다. 시간은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내 상태는 완전히 개판이었다. 전경으로 군복무하다 외박 나왔을 때, 복귀고 뭐고 그냥 도망치는 중이었으니까. 잡혀가면 막장이라는 불안에 떨며 경찰 옷깃만 보여도 달아나고, 구급차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골목 안에 숨었다. 그러다 캄캄한 곳에 있으면 쉽게 눈에 띄지 않을 거라는 기대로 극장에 숨어들었다. <세상밖으로>가 상영 중이었다. 탈옥수들이 주인공인 영화라니. 탈영병인 내 심정은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와락 동화될 수밖에 없었다. 유머와 페이소스가 범람하는 화면 속 인물들은 바로 나였으며, 내가 하고 싶은 행동들을 신나게 대변했다. 나는 그들이 잡히지 않기를 기도했고, 그들의 아이러니한 에피소드에 웃었고, 마지막 장면에선 끝내 오열하고 말았다. 그렇게 운 건 젖 떼고 처음이었다. 영화를 본 뒤엔 자장면을 먹었다. 이건 안 먹을 수 없는 영화다.
영화를 열 번째 본 뒤 거의 대사를 외울 지경이 되었을 때 끝내 자장면 먹을 돈도 떨어졌다. 난 은행을 털러 가기로 결심했다. 창구 위에 뛰어올라가 “잘 들어. 나 막가는 인생이야. 말만 잘 들으면 목숨은 살려줄게. 너 빨리 돈 담아.”라는 대사를 나도 때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내겐 총이 없었다. 나는 배고픔을 못 참고 그냥 자진복귀하러 가다 잡혔다. 그 뒤로도 우울할 때마다 다시 보고, 매번 자장면을 먹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세상밖으로>를 스무 번째 다시 봤다. 그리고 그때처럼 자장면을 주문했다. 날씨 좋다. 아, 이런 날씨엔 은행을 털어야 하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