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말띠 신부>(1966) 코미디와 메시지의 줄다리기

by.정우정(삿포로국제단편영화제 프로그래머) 2011-05-19조회 1,801

<맨발의 청춘>의 엄청난 성공 뒤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 김기덕 감독은 왕성한 연출활동을 통해 다양한 장르적 실험을 했던 인물이다. 그는 전쟁영화 <남과 북>(1965)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그려냈으며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SF장르에 도전해 <대괴수 용가리>(1967)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말띠 신부>(1966)를 성공시키며 코미디 영화 연출의 재능도 보여주었다.

코미디와 교훈적인 메시지

<말띠 신부>는 1963년 이형표 감독이 연출한 <말띠 여대생>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1979년 만들어진 <말띠 며느리>와 함께 말띠 여자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속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세 작품 모두 기 센 여주인공들을 등장시키며 “말띠 여자들이 드세다”는 사회적 편견을 재확인시키고 있지만, 여성들 스스로 말띠해의 미신을 부정하고 사회적 편견에 맞선다는 결말을 통해 <말띠 신부>는 다른 두 작품과 그 입장을 달리한다. 거짓 임신으로 남편에게 금욕과 가사노동을 강요하고, 친구를 성희롱하는 남자를 혼내주는 귀여운 악녀들의 활약과 당당함을 통해 <말띠 신부>는 코미디 보기의 즐거움과 함께 교훈적인 메시지 또한 거부감 없이 효과적으로 전달해낸 수작이다.

영화는 말띠 올드미스 황정순의 결혼식 장면으로 요란하게 시작한다. 말띠 여자들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둘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두 모이고, 신랑신부가 퇴장할 때 울려 퍼지는 찢어질 듯한 ‘운명교향곡’은 앞으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을 암시한다. 곧 등장한 사주센터 사장 김희갑은 여러 커플의 에피소드를 실례로 들며 사주궁합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또한 1966년 병오년은 백말띠의 해로 이해에 태어나는 여자는 특히 팔자가 세기 때문에 절대로 아기를 낳지 말라고 당부한다.

말띠해와 사회풍조

늦깎이 말띠 신부인 황정순은 밤마다 기운을 못 쓰는 남편(박암)에게 정력드링크를 만들어 먹이며 잠자리를 강요한다. 두 번째 말띠 신부인 남미리는 백말띠에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해 남편(윤일봉)에게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애처가 남편은 집안일을 도맡으며 아내에게 헌신한다. 말띠신부 엄앵란 또한 백말띠 해에 출산을 피하기 위해 남편(신성일)에게 임신했다고 속이고 잠자리를 거부하며 가사 또한 떠넘긴다. 넘치는 성욕을 주체할 길 없는 남편은 이런 아내에게 불만이 많다. 그러나 머지않아 두 말띠 신부의 거짓 임신 사실은 들통이 나고 분노한 남편들은 지금까지 그들이 당한 방식으로 분풀이를 하는 등 부부관계는 위기를 맞게 된다.

말띠해인 1966년 1월 1일 개봉해 더욱 화제가 된 <말띠 신부>는 부부간의 애정행각과 대사가 다소 외설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개봉 당시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요즘 시대에 “말띠 여자는 드세고 팔자가 세다”라는 소리를 하면 손가락질을 받을지 모르지만 사실 이런 미신을 믿고 말띠해에 여아를 낳지 않으려는 풍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02년 말띠해가 임박한 2001년 겨울에는 조기출산을 위한 제왕절개수술이 급증하는 등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기상천외 코미디

<말띠 신부>를 만드는 작업이 너무 힘들어서 김기덕 감독은 더 이상 코미디영화를 만들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덕분에 <말띠 신부>는 김기덕 감독의 유일한 코미디영화가 되었지만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코미디 연출자로서의 끼와 재능을 마음껏 발산한다. 주체 못하는 정력을 소모하기 위해 절구 찧기 운동을 개발한다는 발상은 기발함이 넘치며, 남편의 정력증진을 위해 온갖 괴상한 이름의 정력제를 넣어 칵테일을 제조하는 늦깎이 신부 황정순의 능청스러운 모습 또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영화의 코미디적 압권은 무엇보다도 가슴에 손을 넣고 있는 나폴레옹의 그림을 패러디한 대목일 것이다. 평소 위장병 때문에 가슴에 항상 손을 얹고 있던 나폴레옹 대신 <말띠 신부>에서는 바지 속에 손을 넣고 있는 나폴레옹의 그림이 등장하는데, 그의 이런 행위가 사실 정력 증진을 위한 요가적인 시도였다는 해석은 가히 기상천외하다.

풍성한 음악이 담긴 영화

<말띠 신부>가 가진 또 다른 매력은 영화가 가진 음악적인 풍성함에 있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해서 ‘What I’d Say’의 번안곡을 몸을 흔들어대며 불러대는 젊은이들은 1960년대 왕성하게 활동하며 큰 인기를 끌었던 한국 최초의 록그룹 ‘키보이스‘로 이들의 모습은 당시 한국의 대중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최창권은 1966년 데뷔 이래 110편의 영화음악 만든 한국영화사의 대표적인 음악감독이다. 만화영화 <로보트태권V>의 음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는 <무녀도> <삼포가는 길> <고교얄개> <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의 작품에서 음악을 담당하며 한국 영화음악의 발전을 이끈 인물이다. 초기작인 <말띠 신부>에서 최창권 음악감독은 클래식과 재즈, 라틴, 인도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영화에 생기와 웃음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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