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획전에서는 장편 데뷔작 <당시> (2004)를 비롯해, 김치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조선족 여성 순희의 일상과 파국을 다룬 <망종>(2005), 몽골의 대평원을 횡단하는 탈북 여성과 아들의 고단한 여정을 그린 <경계>(2006), 중국과 한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일종의 연작처럼 꼭 닮아 있는 두 편의 영화 <중경>(2007)과 <이리>(2008), 그리고 지난 3월 개봉한 신작 <두만강>까지 총 6편의 영화를 상영했으며, 특별히 장률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궤도>(김광호, 2007)가 이번 기획전에 포함되어 의미를 더했다. 기획전에 맞춰 장률 감독을 초청, 관객과의 대화와 대담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마련되었다. 특별히 3월 9일 신작 <두만강> 상영 후 열린 장률 감독과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대담 현장을 공개한다.
우리의 아픈 기억, 두만강
정성일 평론가는 “지난해 말 조선족이 나오는 영화 <황해>가 개봉했다. <황해>가 타자, 즉 옌벤에 살고 있는 조선족을 다루는 방식을 보여줬다면, <두만강>은 타자가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었다.”고 평한 뒤 “장률 감독의 5편의 영화를 모두 봤다. 그 영화들에서 냉정함이 느껴졌다면 <두만강>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며 두만강에 대한 장률 감독의 느낌을 물었다. 장률 감독은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 그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라며 “영화에 나오는 할아버지가 산에서 나무를 캐고 내려오면서 ‘죽으면 두만강에 묻어달라’는 말을 한다. 보통 사람들은 죽고 나면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 묻어달라고 한다. 영화라서 이런 대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죽어서 두만강에 묻히길 원한다. 우리 부모님도 농담 반 유언 반으로 비슷하게 말씀하셨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반드시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두만강은 우리의 아픈 기억이 아닐까 생각한다. 두만강은 아픔이 있는 곳이다. 강산애의 ‘라구요’라는 노래에도 그런 내용이 있지 않나. 나 역시 죽고 나면 두만강에 묻히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라고 두만강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밝혔다.
두만강의 사계를 담은 89분
<두만강>은 오랜 시간 기획된 장기 프로젝트였다. 장률 감독의 두 번째 영화 <망종> 개봉 당시 정성일 평론가와의 만남에서 이미 두만강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 것이라 밝힌 바 있다고 한다. 당시 장률 감독은 이 영화가 세 시간이 넘는 영화가 될 것 같다고 예견했지만 실제로 만들어진 <두만강>의 상영시간은 89분이다. 정성일 평론가가 러닝타임이 짧아진 이유에 대해 묻자 장률 감독은 “89분으로 완성된 영화를 보니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 잘한 것 같다. 여기 계신 분들 중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를 보신 분이 있나? 영화가 애매하고 길었다”며 좌중을 폭소케 했다. 이어 “정성일 감독의 말대로 <두만강>은 장기 프로젝트였다. 두만강의 사계절을 담고 싶었다. 두만강의 사계를 영화에 담는다는 것은 두만강 자체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 욕심을 버린 것은 아니고 여러 가지 제작과정에서 사정이 생겨 영화가 짧아졌다”고 고백한 뒤 “앞으로도 두만강을 영화에 담을 기회가 많을 것”이라며 감독으로서의 욕심을 버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아이의 세계와 어른의 세계
<두만강>은 아이들의 세계를 중심에 두고 어른들의 세계가 진행되는 방식을 택한다. 보통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영화들은 영화 말미에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두만강>은 영화의 구심점이었던 소년이 자살을 택하는 등 감독의 냉정한 결정이 드러나는 영화다. 이 점에 대해 장률 감독은 “난 현재 베이징에 살고 있다. 베이징은 나에게 타향이다. 타향에 살면서 고향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을 경우 그 영화는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과 연결된다”며 <두만강>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장률 감독은 영화의 결론에 대해 “이 영화를 구상하고 시나리오를 쓰면서 소년을 반드시 살려야겠다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어른의 시각에서 보기에는 이 결론이 너무하다 싶을 수 있다. 그것은 어른들이 계산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약속, 혹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을 어른들은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계산하지 않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도 목숨을 걸 수 있다. 소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충분히 목숨을 던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관객들의 질문이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대담’이라는 형식 자체가 지루할 수 있고, 정성일 평론가의 표현대로 영화는 ‘애매’하며, 진행을 맡은 정성일 평론가 역시 진지해 ‘대담이 딱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담은 진행자의 친절한 설명과 감독 특유의 유머가 더해져 즐겁게 이어졌다. 대담 이외에도 장률 감독이 초청된 모든 행사는 시네마테크KOFA 홈페이지(www.koreafilm.or.kr/cinema)에서 무료로 다시 볼 수 있다. ‘장률 감독전’은 3월 1일부터 10일까지 9일간에 걸쳐, 21회 총 1933명이 관람하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