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라는 정해진 시간에 며칠이라도 더 주어지기를 바랐던 3월이었다. 영화사의 빛나는 한 장을 장식하는 존 포드와 장 피에르 멜빌 같은 거장들의 작품에서부터, 중국과 한국의 경계를 넘나들며 묵직한 영화세계를 선보이고 있는 장률 감독의 전작, 인생의 가장 반짝이는 순간의 감성과 시간들을 포착한 한국 청춘영화의 걸작들을 만나보는 한국영화 기획전, 그리고 블루레이 정기상영에서 만나게 될 작품까지, 다채롭다는 표현이 어울릴 다양한 작품으로 꽉 채워질 3월 시네마테크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든 생각이 딱 그러했다.
시대와 국적을 망라하는 다채로운 영화와 함께할 3월, 그 출발은 장률 감독의 작품들로 시작한다. 재중 동포이자 중국에 거주하며 한국, 중국, 몽골, 프랑스 등 여러 국가와 합작 형태로 영화를 만들고 있는 장률 감독의 영화는 자체로 ‘국경’과 ‘경계’에 관한 다양한 사고를 불러일으킨다. 2004년 첫 번째 장편 <당시>로 한국영화계에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 장률 감독은 김치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조선족 여성 순희의 일상과 파국을 다룬 <망종>(2005), 몽골의 대평원을 횡단하는 탈북 여성과 아들의 고단한 여정을 그린 <경계>(2006), 중국과 한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일종의 연작처럼 꼭 닮아 있는 두 편의 영화 <중경>(2007)과 <이리>(2008), 그리고 작년 부산영화제 상영작이자 3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신작 <두만강> 등 6편의 장편을 통해 전쟁과 이주, 분단 등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형성되어온 민족과 인종, 국경의 문제들을 담담한 어조로 묵직하게 그려왔다. 한국과 남한, 한국계 중국인, 탈북자, 몽골인 등 다양한 국적의 이들이 혼재한 그의 영화는 영화학자 김소영의 지적처럼 “동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침략사와 조선에서 중국으로 이주한 이주민의 역사 그리고 한국으로의 일시적 귀환 등을 모두 아우른다는 점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와 현재를 환기”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라는 예술을 통해 역사와 현실에 대한 깊은 사유를 진전시켜온 장률 감독의 영화를 살펴보는 이번 기획전은 점점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사라지는 최근 한국사회와 한국영화의 외연과 사유의 폭을 넓히는 특별한 자리가 되어줄 것이다. 3월 1일부터 10일간 계속되는 이번 기획전은 <당시>부터 신작 <두만강> 등 장률 감독의 전작 6편과 그가 제작을 맡았던 김광호 감독의 <궤도>(2007) 등 7편의 영화가 모두 상영되며 강연과 대담, <이리>의 배우 윤진서가 참여하는 관객과의 대화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도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장률 감독의 영화와 함께 3월 중순에는 한국영화사를 관통하는 청춘의 아이콘들을 만나보는 기획전 ‘청춘영화, 청춘스타’전도 준비되어 있는데,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를 통한 관객 설문조사에서 선정된 역대 청춘영화 10선을 포함한 주옥같은 청춘영화들이 상영될 예정이다. 기간 중에는 관객 설문조사를 통해 최고의 청춘영화로 선정된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 상영 후 배창호 감독을 초청, 관객과의 대화도 가질 예정이다. 동시대 사회와 역사, 영화에 대한 첨예한 고민을 담은 작품에서 희망과 절망, 아름다운 미래와 비루한 일상의 교차 속에 꿈을 꾸는 청춘의 특권과 기운으로 가득한 영화들, 그리고 다른 예술과 구분되는 영화의 아름다움과 힘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거장들의 걸작까지 다양한 작품과 함께 3월, 성큼 다가올 새로운 계절을 시작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