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웬일이야?” 정말 뜻밖이라는 듯, 1년 만에 만나는 이 남자는 의자에 푹 파묻었던 몸을 일으킨다. 반가움 조금, 의외라는 마음 반, 그래도 자신을 찾아온 누군가에 대한 예의 비슷한 것 아주 조금. 병운이라는 이름의 뻔뻔한 얼굴을 한 이 남자를 쳐다보는 희수는 기가 차다. 그녀는 온갖 짜증을 누른 채 간단하게 말한다. “내 돈 갚아. 350만원.” 연인이었다, 그들은. 그리고 헤어졌다. 희수가 병운을 찾아낸 곳은 경마장. 그 장소와 병운을 바라보는 희수의 표정으로 미루어 서로 사귀기 시작하면서 둘의 관계가 끝날 때까지의 희수의 감정이 읽힌다. 병운은 낙천주의자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에게 슬픔이나 절망 혹은 낙심 같은 단어는 찾아들 틈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지금 수중에 한 푼의 돈이 없어도, 희수의 돈을 오늘 중으로 다 갚아야 하는 일도 아무 걱정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병운은 희수와 함께 그녀의 차를 타고 돈을 빌리러 다닌다. 돈을 빌려서는 희수에게 조금씩 갚는다. 병운이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찾아다니는 사람들 또한 천차만별이다. 중소기업의 CEO부터 술집 아가씨, 이혼한 후 어린 딸을 키우는 마트 직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자유분방함을 즐기는 사촌 등등.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희수(와 관객인 우리)의 표정은 어이없음으로 가득 찬다. 그런데 이 남자. 그렇게 어이없게 뺀둥거리지만,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어딘가 순수하고 진심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이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사람이 십시일반 아무 대가 없이 돈을 빌려주는 것은. 병운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돈을 받아 떠나는 희수, 난, 이 남자를 제대로 알기나 했던 걸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우리가 평생 만나는 사람들, 알게 되는 사람들, 알고 지내는 사람들,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그리고 정말 소중한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들 중 적어도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안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희수와 병운의 관계에 투영해본 우리의 모습을 보니, 과연… 더 재미있는 것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 이를테면 연인이나 가족의 경우, 우리는 그에 대해서 정말 잘 알고 있는 듯 착각하지만 정말 잘 알고 있는 걸까 의심이 간다는 것이다. 지극히 가정적이고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가 알고 보니 냉혈한일 수도 있고 소심하고 무능한 아들의 내면엔 폭발 직전의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 신경쇠약인 아내는 알고 보면 카리스마 있는 여장부일 수도 있고 세상이 마냥 행복한 듯 미소를 머금고 사는 내 친구는 마음속에 울분을 꼭꼭 숨겨놓고 사는 상처 입은 영혼일 수도 있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결국 내 마음에 따라 여러 각도로 변할 수 있는 것이고 실체에 접근할수록 진정한 앎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병운을 처음 보았을 때 찌푸려졌던 마음은 하루 종일 병운이 만나는 사람들을 함께하면서 점점 환하게 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