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영화를 찾아서]꼭 찾아야 할 한국영화 8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비운의 걸작, 이두용 감독의 <해결사>(1981)

by.김영진(영화평론가) 2011-01-10조회 1,708

어떤 이들은 이두용의 <해결사>를 또 얘기하는 게 식상하다 하겠지만 해도 할 수 없다. 나는 어릴 적 이두용 감독의 팬이었고 그의 비운의 걸작은 <해결사>일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게 맞는 생각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불과 30여년 전 작품인데도 이 영화의 프린트는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해결사>는 1970년대 중반에 그의 태권영화를 보며 다른 감독들의 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재미를 주지만 역시 어딘가 모르게 한국영화 특유의 날림 분위기를 지우지 못하는,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늘 미진하고 다음 영화는 더 재미있어지겠지라는 기대를 갖게 한 이두용 감독의 액션영화에서 액션의 재미뿐만 아니라 다른 무엇도 가능하다는 걸 느끼게 해준 신선한 작품이었다.

<오빠가 있다>와 같은 범작에서조차 이두용의 영화에서 액션은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비상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것이지만 대개 그것은 기초공사가 허술한 영화의 전체 뼈대를 상쇄할 만큼 매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해결사>는 이와 달리 액션영화이기도 하지만 동시대 한국 사회의 감춰진 풍경을 드러내는 영화의 전반적인 테마의식이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사회파 영화이기도 했다. 재개봉관에서 약간 닳은 필름으로 본 이 영화에서 가장 신선했던 것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공간들, 세트가 아닌 실제 공간에서 찍은 풍경들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직업들과 연관된 구체적 실감을 띠며 형성하는 전체 분위기다. 영화를 봤을 당시 내가 모르던 타락한 어른들의 세계, 짐짓 아는 척했지만 사실 아무 것도 몰랐던 고교생의 눈에 <해결사>에 담긴 지하 돈시장의 폭력과 추레한 비극은 충격이었다.

친구들 사이에 영화를 꽤 안다고 소문나 있던 나는 이두용이 당시 최고의 감독이라고 곧잘 말하곤 했고 그는 <피막>, <물레야 물레야> 등으로 존경받는 주류 감독이 됐으며 <뽕>과 <돌아이> 시리즈로 대중적 인기도 높은 감독으로 1980년대를 보냈다. 그러나 나는 마음 한구석에 이두용이 왜 <해결사>와 같은, 문학성은 없지만 영화적 매력은 대단한, 동시에 한국의 루저들의 격렬한 분투기를 폭력으로 풀어낸 이두용식 액션영화의 본령은 본격적으로 펼쳐주지 않는지 좀 서운했다. 여하튼 그는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가지 않았고 <흑설>이나 <최후의 헌터 GJ>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태작 액션영화만을 찍었다. 하는 수 없다. <해결사>의 프린트를 찾아내 한때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그의 비운의 걸작을 똑똑히 기억해내고 싶다. 물론 내 기억이 그리 틀린 것은 아닐 것이란 확신이 있다. 지금은 어른이 된 많은 영화인도 그 영화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해결사>는 그런 우리에게 세상의 외면 속에서도 발견해야 할 한국영화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느냐를 테스트하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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