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영화를 찾아서]꼭 찾아야 할 한국영화 2 시대의 고통과 어둠이 숨어있는 범죄영화, 김기영 감독의 <아스팔트>(1964)

by.오승욱(영화감독) 2011-01-07조회 2,433
아스팔트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1950년대 말에서부터 1960년대 말까지의 10년간 멋진 한국 누아르 영화가 왜 이렇게 드문가? 이다. 암울하고 절망적인 검은 영화 <오발탄>과 황량한 왕십리의 황토바람이 인상적이었던 범죄영화 <지옥화>, 죄의식에 사로잡힌 우울한 주인공의 검은 영화 <원점> 정도가 내가 기억하는 한국의 검고 어두운 범죄 영화들이다. 그 궁금증 때문에 영상자료원의 데이터베이스를 뒤지다 여러 편의 매혹적인 영화들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를 볼 수는 없었다. 검고 어둡다고 생각되는 범죄영화들은 안타깝게도 거의 모두가 몇 줄의 줄거리로만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형사 김진규는 밀수범 장동휘를 검거하는 도중 그의 아내를 살해한다. 김진규는 장동휘를 검거한 공로로 이층짜리 양옥집을 갖게 되었다. 형사에게 아내를 잃고 수감되는 사내 장동휘는 출소한 후 아내의 복수를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차에 싣고 김진규를 찾아간다. 아내와 가정을 잃은 그 고통을 김진규에게 되갚으려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다음해에 만들어진 김기영 감독의 <아스팔트>는 네거필름이 사라져 이렇게 몇 줄의 줄거리로만 남아있다. <아스팔트>는 개봉 당시 좋은 평을 받은 영화가 아니었다. 심지어 몬도가네 적 스릴러라는 혹평까지 받는다. 고무마스크를 쓰고 여장을 한 악당이 다리를 절며 형사 김진규의 아내 주증녀를 미행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그로테스크하다고 하며, 영화에 나오는 여러 가지 기괴한 소도구와 대도구들이 감독의 기괴한 취미를 그대로 드러낸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몬도가네적이라고 한 것 같다. 하지만 죄의식에 사로잡힌 형사역에 김진규가 너무나 그럴듯할 것 같고, 핏발 선 눈으로 다이너마이트를 짊어지고 복수를 감행하려는 장동휘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검고 어두운 범죄 영화는 언제나 그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의 고통과 욕망을 숨기고 있어 그것을 찾아내는 자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영화를 본다면 틀림없이 황홀한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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