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애니메이션 감독인 나는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그렇게 크게 받은 편은 아니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감독인 내가 한국의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았다면 좋았겠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초기작인 <미래소년 코난>부터 데자키 오사무의 <내일의 죠> 등등 어릴 때 TV에서 방영해주던 애니메이션들은 대부분 일본의 것이었다.
철이 좀 들었을 때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이 <홍길동>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작품을 보고 싶었지만 <홍길동>은 필름이 유실되어 어떤 경로로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100년, 200년 전 작품도 아니고 불과 40년 전 작품이…. 그것도 감독도 멀쩡히 살아 있는 마당에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볼 수 없다는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사람이 나뿐이었을까.
그 후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은 원본에 가까운 필름이 일본에서 발견되어 2008년 영상자료원에 의해 복원되었다. 복원 후 상영회가 열려 <홍길동>을 보았을 때 마치 태어나 한 번도 보지도 못한 아버지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최초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나의 선배들 모습 역시 겹쳐 보여 가슴 깊은 곳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더랬다. 이런 귀중한 작품이 왜 유실되었을까.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밀짚모자 때문이라는,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하게 되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원 소스 멀티유즈를 좋아하는 제작사에서는 이미 흥행에 성공하고 극장에서 내린 <홍길동>의 필름을 밀짚모자의 머리 부분 띠 장식용으로 팔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홀랑 모두 팔다 보니 원본 필름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아직 영화산업의 체계가 미처 잡혀 있지 않던 1960~70년대의 해프닝이었을까? 그렇다면 그 해프닝이 과연 지금은 일어나지 않고 있을까? 다시 복원된 <홍길동>이라는 작품을 현재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는 우리와 앞으로 애니메이션을 할 후배들은 맘껏 볼 수 있을까?
아쉽지만 아니다. 여전히 복원된 홍길동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홍길동>의 필름 복원 후 당연히 곧 <홍길동>과 <호피와 차돌바위>가 DVD로 묶여 기념판으로 나올 줄 알고 있었다.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의 DVD를 만드는 것은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에게는 큰 자료였기 때문이다. 또 미처 복원 기념 상영회를 보지 못한 사람들 역시 그 작품을 보고 싶어했고 나 역시 다시 한 번 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복원되고 2년이 지난 지금도 <홍길동>의 DVD는 발매되지 않고 있다. 그 부분을 이해할 수 없어 한국영상자료원에 몇 차례 문의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판권을 가지고 있는 제작사가판권 계약에 관해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이어서 DVD 발매는 힘든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40년 전 원본 필름이 밀짚모자의 띠 장식용으로 팔려나가 유실돼버리고 40년이 지난 지금 한 일본인이 보관하고 있던 필름이 발견되어 복원되었지만 판권 문제로 빛을 보지 못하고 창고에 있는 <홍길동>은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