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동 감독은 1960년대 중후반 <단발머리> 등 몇 편의 영화를 연출한 뒤, KBS에 입사해 드라마 PD로 줄곧 활동해왔다. 드라마 PD로서 화려한 이력을 제쳐둔다면 영화계에서 그의 이름은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단발머리>를 본다면, 그의 이름을 꼭 기억해두어야만 한다. 1967년에연출한 <단발머리>는 당대 신문기사에서 “꿈을 먹고 사는 여성 취향의 영화”로 폄하되었지만,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곳곳의 화면들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작품을 연상시키리만큼 아름답다. 당시 서울의 거리 풍경뿐 아니라, 후반부 섬에서 촬영한 장면 등은 이 영화를 ‘불륜치정극’이 아닌 남성적인 세상에 불을 지르는 격조 높은 ‘여성’ 영화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특히 배우 김혜정은 여성의 멜랑콜리를 사막과도 같은 진흙 갯벌 속에서 인상적으로 펼쳐낸다. 아래 사진은 그 중 한 장면. 숨겨진 또 하나의 보물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