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 감독의 <명자 아끼꼬 쏘냐>(1992) 절박하게 그려낸 질곡의 수난사

by.김시무(영화평론가) 2010-11-18조회 3,883

1974년 데뷔작인 <별들의 고향>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이장호 감독은 잠시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이라는 작품을 계기로 새로운 한국영화의 물꼬를 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바보선언> 등 일련의 사회성 짙은 영화들로 1980년대를 수놓았던 이장호 감독은 1987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라는 매우 이색적인 걸작 한 편을 끝으로 그의 시대를 마감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1992년 이장호 감독이 당대 한국 최고의 여배우인 김지미와 손을 잡고 야심 차게 도전한 대하사극(大河史劇)인 <명자 아끼꼬 쏘냐>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단한 공력을 들인 이 작품마저 흥행에 참패함에 따라 이장호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말았다. 이 영화가 제작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한국의 문화계는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당시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자는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던 시기였기에 민족(民族)을 화두로 내세운 영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명자 아끼꼬 쏘냐>는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명자’라는 조선여인이 ‘아끼꼬’라는 일본식 이름과 ‘쏘냐’라는 소련식 이름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인생역정을 통해 일제(日帝) 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은 수난의 역사를 돌이켜보려는 시도였다. 이처럼 거대한 담론을 웅장한 스크린에 담기 위해 이장호 감독은 당시 동원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물량공세를 펼쳤으나 막상 완성된 영화는 그러한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활극적인 요소가 강했던 영화의 전반부와 멜로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했던 후반부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했으며, 게다가 비련의 여주인공 역을 맡은 김지미와 상대역인 이영하의 나이차에서 오는 간격이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감독 자신은 극중 처녀시절부터 중년시기까지 모두 소화해낸 김지미의 무리한 배역이 문제라는 평론가들의 지적에 대해, 외국 관객들은 이에 개의치 않는다며 반박했다.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김지미의 연기력도 탁월했으며 작품 자체도 마음에 든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명자 아끼꼬 쏘냐>는 어떤 영화인가?  

동진(김명곤)은 모종의 임무를 띠고 일본의 가라후토(樺太)로 향한다. 가라후토는 홋카이도의 북쪽에 있는, 남북으로 길쭉하게 뻗은 섬을 부르는 일본식 명칭이다. 이 섬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후 러시아 연방에 귀속되어 지금은 사할린(Сахалин)이라고 불린다. 영화는 바로 이 같은 지정학적 배경을 가진 낯선 땅을 무대로 삼고 있다. 일본 공산당에 가입해 좌익 활동가로 투쟁 중인 동진은 그곳에서 파트너인 야마모토(이영하)와 접선을 한다. 임무수행 중 동진은 어릴 때부터 연모(戀慕)했던 이웃집 누나 명자(김지미)를 만난다. 명자가 이곳에 온 이유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이곳으로 추방된 남편 유민호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민호는 일경(日警)의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변절하고 어용단체 ‘협화회’에서 조선인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양심의 가책으로 아편에 중독된 상태다. 민호는 명자의 여비를 가로채 종적을 감추고 외지에 홀로 남겨진 명자는 기생집에 팔리는 신세가 된다. 명자가 이름을 아끼꼬로 바꾸고 마담으로 일하던 중 동진과 재회한 것이다. 한편 동진은 야마모토와 함께 가라후토 섬의 최고위 관리인 오오쓰를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야마모토는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다. 이때 아끼꼬(명자)가 헌병대장 요시무라를 구워삶아 야마모토를 구명(求命)해주는데, 그 과정에서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린다. 야마모토는 사실 조선인이었다. 본명이 민영준인 그가 항일투쟁에 투신하게 된 동기는 관동대지진 때 일제(日帝)에 의해 무고한 가족들이 학살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명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행복감에 젖지만, 야마모토는 끝내 체포되어 처형당한다.

이 와중에 일본의 패배로 전쟁이 끝나고 가라후토(즉 사할린)는 러시아의 영토로 편입된다. 그리고 45년의 세월이 흐른다. 이제 노인이 된 동진은 어느 날 사할린 시내를 걷다가 가즈꼬(이혜영)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처녀시절 동진의 사람됨에 이끌려 일방적으로 따라다녔던 일본인이었다. 가즈꼬는 종전(終戰)후 호적(戶籍)이 없다는 이유로 일본 본토로 귀환하지 못한 채 사할린에 주저앉게 된 것이다. 한편 러시아 주둔군 사령관에게 호소하여 남편인 야마모토의 살해범인 요시무라에게 복수를 한 명자는 귀국을 시도했으나 거의 폐인이 된 전남편 민호와 재회하는 바람에 발목이 잡히고 만다. 이렇게 해서 명자와 가즈꼬 그리고 민호는 서로를 의지하면서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하지만, 민호 역시 자살을 택한다. 또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1956년 명자는 귀국하고 싶어하는 조선인들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가즈꼬와도 헤어지게 된다. 그로부터 또 강산(江山)이 세 차례나 변한 후 동진은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명자를 찾게 되는데, 이미 꼬부랑 할머니가 된 그녀는 더 이상 어떤 희망도 갖지 못한 채 힘겨운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 북한 국적자이기 때문에 남한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원천봉쇄되었던 것이다.

줄거리가 길어졌지만, 나는 일제강점기의 질곡(桎梏)을 겪었던 사람들의 수난사를 이 영화보다 더 절박하게 묘사한 한국영화를 본 적이 없다. 나는 이 작품 하나로 사할린 교포들의 삶과 애환을 비로소 절감할 수 있었다. 단순히 소재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랬다면 걸작의 재발견 운운하기가 좀 난감했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처녀 시절의 명자까지 도맡은 김지미의 연기는 다소 부자연스러운 듯 보였지만, 본래의 페이스를 찾은 중년의 아끼꼬는 물론이고 고령의 할머니인 쏘냐 역을 대배우 김지미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소화해냈던 것이다. 광복 전후의 60여 년을 아우르는 기나긴 세월 속에 한 여자가 겪은 한 많은 개인사를 응축해낸 이장호 감독의 연출 역량을 새삼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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