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의 벌레먹은 장미>(정회철, 1982)

by.성기완(시인,뮤지션) 2010-09-28조회 810
고2 때였던가. 1983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다. 우리는 더러운 학교에서 생활했다. 한 반에 60명 이상 뜨거운 땀냄새를 쏟으며 쉬는 시간마다 도시락을 까먹고 그 반쯤 먹은 도시락을 다시 때에 전 실내화 주머니 옆에 꽂곤 했다. 사열, 분열 같은 점검이 있을 때면 하루 4시간 이상씩 군사훈련을 받았고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했다. 야구부가 있던 우리 학교의 체육선생님 중에는 금 간 알루미늄 배트를 잘라서 들고 다니는 분이 있었다. 커닝을 하다 걸려서 그 몽둥이로 다섯 대를 맞고 나는 쓰러졌고 친구의 부축으로 집에 겨우 도착했다. 자고 일어나면 엄마가 ‘너 무슨 일 있었니? 허벅지가 이게 뭐야?’ 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고 나는 ‘별거 아냐’ 하면서 허벅지 대신 발기한 거기를 가리느라 다리를 오므렸다. 불결한 학교에서 우리는 자주 종기가 났다. 이명래 고약이 특효였다.
 
그 어떤 공식적인 출구도 없었다.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이 비공식적이었다. 학교 근처에 아이들이 가는 술집이 있었다. 주로 낮술을 먹었다. 그게 안전했다. 아줌마는 상한 돼지갈비를 연탄불에 구워주며 소주를 은밀하게 내왔고 그걸 먹은 후 자율학습 시간에 구토하는 놈들도 있었다. 그러면 익지도 않은 돼지갈비가 툭 튀어나왔고 그가 즐겨 듣는 음악은 헤비메탈이었다. 헤비메탈은 우리의 음악이었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브레이킹 더 로(Breaking the law)’를 들으며 혼자 거울 앞에서 광분했고 <월간팝송>을 구독하는 친구들은 따로 모여 매달 브리핑을 했고 청계천이나 황학동으로 빽판을, 그와 함께 이른바 ‘섹쓰책’을 사러 다녔다. 동네 동시상영관에서 하는 영화를 보러 다니기도 했다. 땡땡이를 까고 응암오거리 근처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신양극장에 가면 스크린에서는 그 시절의 섹스 영화가 두 편씩 연속으로 상영되고 있었다. 단속은 뜸했고 우리는 눈을 내리깔고 슥, 입장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더 편안했다.
 
그중에서도 기억나는 영화가 <벌레먹은 장미>다. 영화가 다른 무엇보다도 성적 환상의 실현 장치라는 걸 그 영화를 통해 알았던 것 같다. 나와 함께 영화를 보던 박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대개의 경우 그와 동행했다. <벌레먹은 장미>는 정윤희와 이영하가 주연이었다. 그리고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 여자 조연이 있었다. 정윤희가 한 번 벗으면 조연은 다섯 번쯤 벗었다. 극 중에서 이영하는 이 여자와도, 정윤희와도 섹스를 했던 것 같다.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으나 여러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여자 조연이 육교를 올라가다가 아스팔트에서 인부들이 굴착하는 것을 보며 육교 위에서 황홀해 하는 장면, 그 여자의 집 벽에 붙어 있는 여자 입술 사진에 전동 드라이버를 밀어넣던 장면, 이영하가 아침 먹는 장면(우리는 그가 찌개며 밥이 차려져 있는 아침을 참 먹음직스럽게 먹던 배우라는 걸 안다), 조연이던가, 주연이던가, 부모가 섹스하는 걸 목격하고 처음 성적 환상을 즐기게 되는 장면, 이영하가 뒤에서 껴안아줄 때 란제리가 흘러내리며 가슴이 드러나고 황홀한 표정을 짓는 장면, 당시 꼭 등장하던 유원지에서의 모터보트 장면, 끝부분이던가, 극중 이영하의 성기가 잘려나가는 장면(그 장면은 전동 톱이 각목을 자르는 장면으로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그때 이영하는 절규한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 영화에 관한 정보는 별로 없다. 정회철 감독님이 만드셨고 정확한 제목이 <진아의 벌레먹은 장미>라는 것 정도를 알았다. 돌아보면 당시는 성인영화의 황금기였다. 우리는 질식 직전의 청춘들이었고 전두환은 노골적으로 야한 영화들을 우리에게 공급했다. 저질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꼭 가는 만두가게가 있었다. 박과 나는 대개 영화에 대한 간단한 리뷰를 하며 척척한 만두를 질겅거리고 난 다음 시원하게 담배 한 대를 피우는 것으로 문화생활을 마치곤 했다. 벌레먹은 장미… 제목이 너무 좋다는 생각을 했다. 꼭 우리의 시간이 그렇게 벌레 먹어가는 것 같았다. 왠지 만두가게 조명은 너무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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