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님이 만드는 영화의 제작 현장에 가면 다른 현장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소리 없는 움직임이다. ‘솔선수범(率先垂範)’. 딱 이 말이 떠오른다. 임 감독님 작품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배우나 스태프나 할 것 없이 감독님의 지시가 있어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몫을 찾아서 한다. 나는 이런 현장 분위기가 무엇에서 기인한 것인지 모르지만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임권택 감독님과 처음으로 함께 작업을 한 작품은 <서편제>다. 한국의 판소리가 중심인 이 영화에서 음악감독을 맡으라는 제의는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영화가 진행되는 사이 사이 소리가 나오는데 그 소리와 조화를 이룰 수 있게 음악을 넣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였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님과 나는 한 가지 명확하게 통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절제’라는 것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지만 그 당시 나는 영화에서 음악은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이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임권택 감독님은 나에게 그 어떤 주문이나 요구 사항을 말하지 않으셨다. 나를 믿고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기셨다. 그 믿음이 <서편제>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서편제> 속 음악은 소리와 어울려 영화에 스며들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첫 번째 작업이 끝나고 나의 음악을 흡족하게 여기신 감독님께서는 내게 또 다른 작품의 음악을 맡기셨고, 이렇게 이어진 인연으로 <태백산맥>(1993), <축제> (1996), <창>(1997)을 연이어 작업하게 되었다.
임권택 감독님께서는 항상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을 마음으로 아끼시고 가족처럼 보듬어주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온화함으로 감독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스스로 더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노력이 모여 최고의 영화가 만들어진다.
임권택 감독님의 현장에서 모든 사람이 각자의 몫에 충실한 것, 감독님의 작품에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 또 영화를 본 이가 마음을 흔드는 울림을 듣는 것은 모두 감독님의 믿음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임권택 감독님께서는 현장에 계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용기와 격려가 되어주신다. 또 함께 하는 이들을 보듬어주시며 작업하시는 모습은 오롯이 가르침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