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자찬 같지만 한국영상자료원의 지명도를 높이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업 중 하나가 ‘한국영상자료원 고전영화 DVD 컬렉션’ 사업이 아닌가 싶다. 점점 더 많은 국내외 연구자와 기관이 영상자료원의 DVD를 구하고 싶어하고, 출시목록을 궁금해 한다. 2004년 저작권 시효가 만료된 2개의 작품으로 소박하게 시작했던 목록도 이제 40종에 가까워지고 있다.
홍보를 겸해 2010년 라인업을 소개할까 한다. 우선 1차로 박상호 감독의 <비무장 지대>(1965)가 나왔다. 한국 분단 영화의 걸작으로 인정받아왔지만, 필름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소문으로만 남아 있던 영화인데, 2004년에 한국정책방송원(구 국립영화제작소)으로부터 베타테이프를 입수해 이번에 DVD로 출시했다. (6월 출시 완료)
2차로는 <1950년대 로맨틱코미디 박스세트>가 대기 중이다. 이용민의 <서울의 휴일>(1956), 이병일의 <자유결혼>(1958), 한형모의 <여사장>(1959) 등 1950년대 대표적인 감독들의 영화로 구성된다. 이 영화들은 50년대 후반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전후 복구로 어둡고 혼란하기만 했던 시대가 아니라, 개인주의와 자유연애가 약동하기 시작한 새로운 시기였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줄 것이다. 세 편 모두 지금 보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뛰어난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7월 초 출시 예정)
3차로는 많은 사람이 기다렸을 이만희 감독 박스세트가 나온다. 우선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이 포함되었다. 혹 너무나 유명한 제목 때문에 영화를 안 보고도 본 것처럼 착각하며, 이 영화를 그저 그런 반공영화 정도로 치부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화를 직접 본다면 ‘명불허전’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 단언한다. 그리고 <검은 머리>(1964). 이만희의 초기 작품 세계가 여지 없이 드러나는 대표작이자, 한국영화사상 가장 독창적인 누아르 영화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녹물로 심각하게 손상되었던 초반 장면을 디지털로 복원한 판본이니 소장 가치가 더할 것 같다(손상이 심각한 프레임에 다른 프레임 정보들을 덧붙이다 보니 어색해 보이는 부분도 있을 수 있으니 양해해주시기를). 그리고 여기에 더해 1968년에 제작되었으나 검열 문제로 개봉되지 못하고, 수장고에 보존되어 있던 것을 영상자료원이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와 2006년 ‘이만희 전작전’을 통해 본격 공개한 <휴일>이 더해진다. 가난한 연인들의 비극적 이야기를 부조리하고 ‘쿨’하게 다룬 이 영화는 1960년대 후반 이만희의 작품세계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마지막은 <암살자>(1970)로 이만희의 실험정신이 극단으로 치달은 작품이다. 완성도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될지 모르지만 이만희의 영화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봐두어야 할 작품. 순서대로 최동훈-주성철, 박찬욱-김영진, 정성일, 오승욱-주성철의 코멘터리가 수록되어 있으니 금상첨화라고나 할까. (8월 중 출시 예정)
마지막 4차로 한국 문예영화의 대표작인 최하원 감독의 <독짓는 늙은이>(1969)가 나온다. 황순원의 유명한 단편을 신인 감독인 최하원의 빼어난 연출력으로 영화화한 작품인데, 황해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9월 중 출시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