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첫 번째 주인공은 인천과 성남에서 온 중고생 15명, 오자마자 박물관에 입장, 전시해설을 잠깐 듣고, 영화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친구들답게 박물관의 영화자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낯선 친구들도 있어 약간 서먹서먹, 머뭇머뭇하는 가운데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아보고는 영화관으로 이동해 <고교얄개>를 관람했다. 간간이 웃음이 터지더니 마지막에 ‘빅 재미’ 선사하는 호철이(김정훈)의 훈계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박장대소했다. 과연 이 영화를 어떻게 재구성해볼지 숙제를 안고서 돌아간 친구들은 다음 시간, 과연 어떤 이야기를 준비해왔을까.
두 번째 시간에는 주요 장면으로 이야기 만들어보기를 시작했다. 주요 장면 사진을 늘어놓고 시나리오를 구상하는데 컷과 컷을 이리저리 붙여가며 어떻게 달라지는지 친구들이 말하는 시간이었다. 붙이고 자르고 다시 붙이고 또 붙이고 다시 자르고 , 아니다 맞다 괜찮다 맞다 맞다 괜찮다 다시 맞다 괜찮다 아니다!! 주요 장면을 모아 만든 <新고교얄개>는 MBC <해피타임>의 ‘명작극장’을 연상케 했다. 풉!
세 번째 시간엔 지금껏 준비한 대본을 토대로 친구들이 직접 카메라를 잡고 마이크를 들고 연기를 했다. 물론 더빙에 불과했지만 연기를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촬영을 하는 사람이나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나 모두 긴장의 연속이었다. 역할 분담을 한 조예민 감독, 액션! 컷! 소리를 어색해하는 것도 잠깐, 시간이 지나자 차츰차츰 배우들의 발음, 감정, 태도뿐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까지 자연스럽게 이끌어갔다.
마이크 담당 민희는 “왠지 제가 이 마이크로 녹음을 하면 뭔가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라며 팔이 아파 힘들어하면서도 끝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처음 해보는 연기에 계속 NG! NG!! NG!!! 넘버 1 - 1 - 5!! 외치자마자 우리의 감독님은 NG!! 이때 터지는 슬레이트 담당 보경이의 목소리 “아…방금 앉았는데 …” 그래도 단연 그날 가장 고생한 사람은 선생님 역을 맡은 승현이었다. NG를 몇 번이나 낸 그는 누나들의 따가운 눈총과 질책과 재촉과 원망 등에도 터지는 웃음을 어찌할 바 몰라 했다. 그에 반해 두수 역을 맡은 혜인이는 장차 뮤지컬 배우가 꿈이라더니 남자 역할을 능청스럽고도 거침없이 해냈다. 길고 긴 더빙 작업이 끝나고 이제는 효과음 입히기에 들어갔다. 선생님이 두수의 뺨을 세 차례나 때리는 장면이 오고! 우리의 불쌍한 촬영담당 박 군의 우람한 팔뚝은 맞고 또 맞아 손바닥 자국으로 빨갛게 달아올랐다. 촬영장 안을 뛰고 또 뛰고 또 뛰고…. 다름 아닌 주인공 두수의 우유배달 장면이다. 효과음까지 끝나고 이제 모든 촬영을 마쳤다. 큰 산은 넘었다.
네 번째 시간 ‘지금 만나러 갑니다.’
우리는 영화 속의 주인공 진유영 감독을 만나러 양평으로 떠났다. 인천부터 출발해 1호선 타고 양평역 도착. 헉, 이건 KTX 타고 부산 가는 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어렵게 만난 감독님과 양평도서관으로 향하며 우리가 만든 영화를 보여드렸다. 어설픈 더빙실력과 교육영상을 본 감독님 슬쩍슬쩍 웃으셨다. 이제 배도 고프고. 감독님이 학생들을 배려해 분식집으로 고고!! 감독님 옆에 모여 앉아 자기소개 실시. 아! 지은이, 은지, 보경이, 봉주 등 이제 자기소개도 끝나고 점심도 든든하게 먹었으니 감독님이 작업하신다는 예쁜 러브하우스로 향했다. 마당에 돗자리 펴고, 카메라 설치 완료. 감독님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사회를 맡은 혜인 양이 “1970년대를 풍미했던 <고교얄개>의 주인공 진유영 감독님을 모시고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박수!!”라고 하자마자 감독님 갑자기 “컷!” 외쳐 우리 모두 놀랐다. 카메라를 잡은 민희에게 친절하게 클로즈업과 풀샷에 대해서 알려주시기 위한 것. 그로부터 인터뷰는 청산유수. 학생들의 다소 엉뚱한 질문에도 찰떡 같은 대답을 해주시고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미래까지 상담해주셨다.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말에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추천하시고 성인이 되면 보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이렇게 양평과 안녕하고 마지막 수업을 끝냈다.
그 뒤 우리는 우리가 찍은 영화와 인터뷰 장면을 보기 위해 작은 극장에 한번 더 모였다. 자신들의 모습에 창피해하기도 하고, 서로를 놀리기도 하는 사이 마지막 상영회도 그렇게 끝났다. 떠나는 지은이가 남긴 말. “선생님!! 이거 저희 계속하면 안 돼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