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여 년 만에 중국에서 돌아온 우리 영화 <삼웅탈미>(정기탁, 1928) 등 일제강점기 영화 4편의 스틸사진 51매를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하며…

by.안태근(한국영상시나리오작가협회 회원,EBS프로듀서) 2010-05-10조회 1,153
삼웅탈미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하는 계기가 된 것은 내가 직접 만든 영화를 잘 보존하자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여태까지 영화제 수상작들을 위주로 모두 12편의 영화를 자료원에 기증했는데, 그 작품들은 <맥> <동춘> <한국 환상곡> <회심> <한국의 춤 살풀이> <아리랑> 등이다. 이것들은 주로 대학 재학 중에 연출한 영화들이거나 졸업 후에 만든 중편 영화와 다큐멘터리들이다.

나는 2001년과 2010년 두 번에 걸쳐 중국에서 입수한 일제강점기 상하이파 영화인인 정기탁 감독과 이경손 감독의 스틸 사진 51매를 자료원에 기증했다. 기증한 스틸 사진의 수는 <애국혼> 16매, <삼웅탈미> 16매, <화굴강도> 14매, <양자강> 5매다. 정기탁 감독의 영화는 중국 측이 보관하고 있는 자료 전부이며, 이경손 감독의 <양자강>은 5매 외에 추가로 더 있었으나 구입을 못하였다. 중국과 거래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데 이 스틸 사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재를 파악하고서도 매우 어렵게 입수했고, 또한 귀중한 가치를 지닌 자료이니만큼 자료원에 잘 보존되어 활용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 영화들은 한국인들이 외국에서 제작한 작품들로 영화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정기탁 감독의 <애국혼>은 한국인이 외국에서 만든 첫 번째 영화이며,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항일영화이기도 하다. <양자강>은 이경손 감독의 영화로 정기탁 감독이 잠깐 중국을 떠났을 때 제작된 영화다.

그 외에 도서 자료들을 기증했는데 이들 역시 1940년대에 출판된 영화 서적들이다. 거의 한국에서는 유일본으로 추정되며 자료는 공유되어야 한다는 판단으로 기증하게 되었다.

올해 3월 10일 영상자료원에 기증한 사진과 도서의 입수 경위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사진은 1997년부터 2007년 사이 두 차례에 걸친 중국 출장길에 중국전영자료관의 오래 교섭한 끝에 구입하게 되었다. 정기탁 감독의 영화 존재를 확인해주는 이들 자료는 나의 한국영화사 복원 작업의 시작이었다. 그 후에 나는 이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논문으로도 발표했다.

이번에 기증한 자료는 정기탁 감독이 1928년에 상하이에서 연출한 <화굴강도> <삼웅탈미> 등 스틸 23장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만들 수가 없었던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인 <애국혼> 이후 같은 해에 만든 영화들이다. 외국인으로서 같은 해에 세 편의 영화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던 상황이었을 텐데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틸의 구입도 협상에서 입수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의 경과를 보면 2007년의 경우 8월 29일 첫 방문 이래 10월 31일에 첫 협상을 시작했다. 지리한 협상 과정을 거쳐 11월 15일에  가격이 정해졌고, 12월 13일에 드디어 내 손으로 들어왔다. 사진의 가격은 애초에 제시된 금액에서 40% 이상 인하된 가격으로 조정되었다.

중국전영자료관을 찾아가 협상할 때 외사처의 류 처장이 처음 제시한 가격은 스틸을 메일로 발송해줄 때에는 장당 900위안이고, 사진을 인화해서 받을 때에는 650위안이라고 하면서 당시 한화 200여 만원의 가격을 제시했다. 1997년에 그렇게 비싸지 않은 가격에 이미 <애국혼> 스틸을 구입한 바 있으니 관장에게 다시 건의해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신화사 통신의 자료 구입비보다 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우리 같으면 하루에 처리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일은 너무도 더디게 진행되었다. 사진을 확인한다고 하루, 담당직원이 없다고 하루, 결국 관장에게 보고해보겠다며 하루,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며 협상은 풀리지 않았다. 자료관을 연속 3일을 방문하고도 허탕을 치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매우 비싼 가격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어 다시 가격 협상에 들어갔다. 결국 40% 할인된 가격을 얻어냈는데 장당 900위안에서 500위안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 사진들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국보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비록 영화 필름은 부재하지만 스틸이나마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다.

그 외 일본어 영화 서적 및 관련 서적 130권 중에는 내가 만든 드라마와 대본 등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청계천을 돌아다니며 어렵게 혹은 운 좋게 구입했던 책들이다. 그동안 이사 다니면서 동고동락했던 귀한 책들로 내겐 자식과 다름없다. 주로 일본영화 전문서적인데 소화 15년, 그러니까 1940년대 책들이다. 이 책들은 갑작스럽게 기증한 것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것을 뒤늦게 실행한 것뿐이다. 책이란 돌고 도는 것이며 필요한 사람에게 더욱 소중한 것이다. 기증본들은 <영화와 문법> <일본영화감독연구> <이탈리아영화사> <영화비평> 등 당시 한국에 전무했던 영화 이론서들이다.

나보다는 우리 선배 세대가 애지중지했을 이 책들이 어찌어찌하여 헌책방에 나왔고 그동안 내가 소장하게 되었다. 내게 책은 업보이기 때문에 많은 책을 분양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지고 다녔다. 책은 공유되어야 하고 더욱이 자료원이 없는 예산을 들여 일본에서 구입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마당에 더 이상 내가 가지고 있을 수 없기에 실행에 옮긴 것이다.

영화 포스터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전응주, 1962)는 지인이 부산에서 공수해 온 것이다. 희귀 포스터이긴 해도 복사본이어서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나 싶었지만 KMDb검색을 해보니 미소장이라 함께 기증하게 되었다. 나무판에 부착된 이 포스터는 부산에서 가져오기엔 부피도 크지만 누군가 이 포스터를 보고 자료로서의 가치를 발견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에서 쓸모를 잃고 나뒹구는 이런 자료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자료란 관심을 가진, 아는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이며 제자리를 찾아가 있어야 한다.

사례를 할 수 있다는 수집팀의 김 팀장 말도 있었지만 마음을 비우고 기증하는 것이니 사양했다. 막상 자료를 기증할 때는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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