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아톤>에 대한 기억 중 하나는 앞서 나가려 하지 않음에도 귀에 잘 들리는 음악과 비로소 마지막이 되어서야 영화를 치고 올라서는 음악이 제법 근사했다는 것. 초원(조승우)의 춘천 마라톤 장면에서 흐르던 5분이 넘는 스코어 ‘달려라 초원’이 그 근사함의 정체인데, 가장 극적이고 또한 독립적으로(영화와 상관 없이) 들을 수 있는 곡이다. 옅은 현 음악을 배경으로 기상 나팔과도 같은 금관의 독주가 울린 다음, 다소 긴박하게, 그러나 점점 힘을 얻어가며 현이 치고 올라가면 어느 사이 피아노가 주요 멜로디를 받아 달려가기 시작한다. 명징하고 경쾌하게 달리는 현과 피아노는 조옮김을 통해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느낌을 전달하는데, 맞다. 그야말로 음악이 초원과 함께 춘천을 달리고 있다.
<말아톤>의 음악을 담당한 김준성은 대학에서 현대음악 작곡을 전공한 후 뉴에이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뉴에이지 피아노 독주곡집 <어느 아침>을 발표한 바 있고, 단편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의 음악을 작업하던 그는 <말아톤>으로 장편 극영화음악에 데뷔하게 된다. <말아톤> 작업 당시 정윤철 감독의 요구사항은 ‘피아노와 현의 오케스트라로 구성된 OST’ 였고, 김준성 음악감독은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그에 걸맞은 결과물을 내놨다. 트랙 1 ‘그 아이…’ 부터 마지막 16번 ‘달려라 초원’까지 OST를 순차적으로 듣다보면 가사 있는 노래가 단 한 곡도 없고(이는 국내 OST에서는 꽤 놀라운 일에 속한다), 모티브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결코 지루하지 않다. 상당히 공들인 음악을 듣는 느낌이랄까. 완성도가 상당하다.
그는 현재 진행형 영화음악 작곡가다. 그러나 최근에는 시끌벅적한 장르물(<고사>, <더 게임>, <세븐 데이즈>,<전설의 고향> 등)의 음악을 주로 하고 있어 <말아톤> 이후로는 기억에 남는 음악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다소 아쉬운데, 조만간 그의 음악이 화면 위로 도드라지는 영화를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