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에 시나리오작가로 데뷔한 나는 김수용 감독과 함께 작업하는 행운을 얻었다. 당시의 메이저 영화사였던 한양영화사에는 기획과 제작을 담당한 최현민(崔玄民)이 있었고, 나는 문공부 영화과에서 시나리오의 심의를 담당하는 말단 공무원이자, 갓 데뷔한 신인 작가였다.
어느 날 소설가이자 절친한 친구이던 이시철(李時哲)이 곧 출판할 소설이라면서 두툼한 교정지 뭉치를 보여주었다. 이시사카 요지로(石坂洋次郞)가 쓴 일본소설을 번안한 <청춘교실>이었다. 세련된 감성과 감각으로 이어지는 청춘소설이어서 나는 각색을 자청하게 되었고, 그렇게 각색된 시나리오가 한양영화사로 넘어갔다. 그리고 며칠 후, 기획자 최현민이 <청춘교실>을 연출할 김수용 감독을 소개해주었다. 나와 김수용 감독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완성된 영화는 신성일, 엄앵란을 주연으로 하는 이른바 청춘영화의 효시가 되어 장안의 화제작으로 등장하였다.
이 작품을 계기로 나는 말단 공무원 생활을 청산하고 한양영화사의 작가실장이 되어 본격적인 시나리오작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와 김수용 감독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되는 <저 하늘에도 슬픔이>가 장안의 화제를 모으면서 개봉되자 사람들은 기획자 최현민, 영화감독 김수용, 시나리오 작가 신봉승의 세 사람을 묶어서 ‘황금 콤비’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최현민은 연극 연출이 업이었으므로 언제나 연극적인 구성과 시추에이션을 중시하는 본격 작품을 요구하였고, 김수용 감독은 소설가를 지망하는 문학청년이라 영화가 좀처럼 갖추기 어려운 문예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김수용 감독의 ‘영화론’은 준엄하기 그지없다.
여러 단어를 원고지에다 옮긴다 하여 그게 곧 문학이 되는 것이 아니듯, 세르로이드 필름에 영상을 담았다 하여 모두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준엄한 선언인가. 또 그가 <갯마을>을 연출할 때는 바닷가의 여러 정황은 물론 “…바다 냄새까지도 스크린에 담고자 했다”고 피력했을 정도다. 영화평론가들이 김수용 감독의 영상언어에 주목하는 것은 그의 내면에 준엄한 영화론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김수용 감독의 초기작품이자 한국문예영화를 개척하고 주도한 수작들…, 아니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일컬어지는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4), <갯마을>(1965), <산불>(1967), <봄봄>(1968) 등은 영광스럽게도 모두 나의 시나리오였다. 이 밖에도 나는 김수용 감독과 함께 <월급봉투>(1964), <학생부부>(1964), <적자인생>(1965) 등의 영화로 당대 청춘영화의 스타 신성일과 엄앵란 커플을 만들어내는 데도 기여하였다.
나는 김수용 감독과 15편 정도의 작품을 함께하면서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우의를 지켜오고 있다. 남아 있는 소망이 한 가지 있다면 수려한 영상언어가 담긴 김수용 감독의 새로운 영화를 한 편 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