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한국은 정치의 해다. 4월에 이미 총선을 치렀고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때만 되면 말하는 축제 같은 선거는 아직 남의 나라 일이다. 여야 모두 여전히 못 잡아먹어 안달이며, 덩달아 국민들까지 양분되기 일쑤다. 국민 삶의 향상을 위해 진지하게 논의할 때임에도 수구꼴통이니 빨갱이니 하면서 서로 물고 뜯기에 여념 없다.
이즈음해서 그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고전 애니메이션이 한 편 있다. 바로 <
동물농장>이다. 영국의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존 할라스와 조이 바첼러 부부가 만든 1954년에 발표한 전설적인 작품이다. <동물농장>이 왜 진정한 전설인지는 제작과정의 비밀과 결말의 진의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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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은 영국의 작품이지만, 루이 드 로슈몽이란 미국인이 제작에 필요한 자금을 댔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유명소설이 원작이고 제작비까지 충분하니 마다할 애니메이션 작가가 어디 있으랴! 할라스와 바첼러는 제작 체제를 단편에서 장편으로 바꾼 뒤 영국 내 실력파 애니메이터를 차근차근 결집시켰다. 스태프 세팅에만 2년이 걸렸을 정도. 그들은 영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모든 역량을 모았다. 지금 보아도 무리 없는 퀄리티는 그 증거라 하겠다.
하지만 <
동물농장>은 제작 막판에 로슈몽과 충돌을 겪는다.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는데, 제작자 측에서 미소냉정을 의식해 농장의 권력을 거머쥔 돼지무리가 전복되는 걸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요구 뒤에는 무서운 음모가 깔려있었다. 사실 이 작품을 처음부터 기획한 건 로슈몽이 아니라 하워드 헌트였다.
미국중앙정보국 CIA의 첩보원이던 헌트는 이후 희대의 정치스캔들 워터게이트 사건을 주동해 악명을 떨친 인물이기도 하다. 미소냉전이 팽팽하던 당시 그는 반공선전을 위해 <
동물농장>을 영화화하기로 생각했다. 그는 요원들을 시켜 원작자의 미망인까지 구워삶아 판권을 따낸 뒤 옛 회사 상사인 로슈몽을 시켜 영국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제작과정의 모든 정보는 헌트와 CIA로 보고되었다. 이런 음모를 할라스와 바첼러는 전혀 몰랐다.
하지만 할라스와 바첼러는 제작자가 원하는 그런 흑백논리의 반공 해피엔딩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 실랑이 끝에 결국은 돼지들의 만찬을 다른 동물들이 습격하는 장면으로 합의를 보고 마무리 짓는다. 언뜻 보기엔 제작자가 원하는 방향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결말의 진의는 한수 위였다. 할라스와 바첼러는 그런 설정을 통해 권력을 쥐고 싶은 인간의 본질적 욕망은 누구나, 언제든지 부패할 수 있음을 강하게 역설한 것이다.
어떤 체제의 사회에서건 권력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권력은 권력을 쥔 자들을 위한 권력이 아니다. 즉 국민들을 위한 권력이다. 그런 면에서 혼란스런 지금의 우리 정국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지금이야말로 쓰레기 정치인들을 확 몰아낼 순간이 아닐까? 참고 참던 농장의 약한 동물들이 욕심에 눈이 먼 돼지무리를 쫓아낸 것처럼 말이다. 한국 정치의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에게 <
동물농장>을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