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 : 같이 살림 차리면 될 텐데...병 신같이.
영달 : 서울 한 장이요.
백화 : 그렇지 뭐...오다가다 만난 사낸데 뭐...너무 일심 품을 것도 없지 뭐.
(영달 울음을 삼키며 백화에게 기차표를 건넨다)
백화 : 나 아이도 낳을 수 있을 텐데...
(영달 계속 울음을 삼키고)
백화 : 사실은 나 남자들 많이 거치지 않았단 말이야. 몇 명 안 돼.
이만희는 <삼포가는 길>을 편집하다 세상을 떠났다. 완벽하게 완성하지 못한 표가 당연히 나지만, 대신 영화 곳곳에 그의 인장이 새겨져 있다. 마지막 작품임을 예감했을 감독은 자기반영성이라는 화두를 놓지 않은 채 끊임없이 형식을 실험하고, 또 한번 ‘모더니즘 영화’의 핵심까지 영화를 밀어붙인다.
백화와 영달이 헤어지는 역사 시퀀스는 이만희 영화에서 반복되는, 멜로드라마적 감정이 최고점에 이르는 바로 그 순간이다. 장바닥에 떼놓은 백화가 기차역으로 찾아오자 영달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언제나 그렇듯 떠나지 못하는 건 여자다. 그가 마무리 못했어도 <삼포가는 길>은 분명 ‘이만희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