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조명하는 ‘가요황제’ 대 ‘엘레지의 여왕’

by.이준희(대중음악비평가) 2010-01-20조회 1,757
 ‘가요황제’ 대 ‘엘레지의 여왕’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논란의 여지가 가장 적은 슈퍼스타 셋을 꼽아본다면, 남인수(南仁樹)·이미자(李美子)·조용필(趙容弼)이다. 그밖에도 더하고 싶은 이들이 물론 적지 않기는 하나, 음악적 역량이나 역사적 의미, 대중을 매료시키는 카리스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역시 이 세 사람의 위상이 압도적이다.

남인수는 1940년대, 이미자는 1960년대, 조용필은 1980년대를 중심으로 모두 한 시절을 풍미하며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언뜻 보아 영화계와는 별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이 대중음악계의 스타들은, 하지만 매우 흥미로운 영화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른바 음악 전기(傳記)영화의 주인공들인 것이다.

음악 전기영화라 하면 “아!” 하면서 떠오르는 <아마데우스>를 비롯해, 귀와 마음을 울린 많은 작품이 있다. 과관(寡觀)한 탓에 우선 생각나는 것이 <파리넬리> <레이> <도어즈> 등 몇 편밖에 안 되기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한국 영화 중에서는 손꼽을 만한 작품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수로 봐도 그렇고, 영화의 완성도를 봐도 그렇다.

'가왕' 조용필을 주인공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는 1981년에 개봉한 <그 사랑 한이 되어>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히트 이후 대마초 문제로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다가 1980년 <창밖의 여자>로 극적인 부활에 성공한 직후 나온 영화였다. 첫 개봉 이후 28년 만인 지난 2009년 7월에 팬클럽 주최로 조용하게 다시 상영하기도 했다는데, 아쉽게도 가서 보지는 못했다. 당대의 ‘트로이카 여배우’ 유지인(兪知仁)과 조용필이 직접 주연을 맡았고, 조용필이 이끌던 그룹 ‘위대한 탄생’도 특별출연으로 포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직접 보지 않았으니 좀 조심스럽기도 하고, 또 <가왕>에게 실례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손발 오그라드는 설정과 연기로 풍성한 작품이었을 거라는 느낌을 아무래도 떨치기 어렵다. 가수 조용필이 아닌 ‘배우’ 조용필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물론 충분히 의미가 있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말 그대로 <엘레지의 여왕>이다. 1967년에 나온 이 영화는, 제목이 같은 주제가가 그런 대로 히트한 덕인지 몰라도 <그 사랑 한이 되어>에 비해서는 그래도 기억하는 이들이 제법 있다. 직접 배우로 뛴 ‘가왕’과 달리, ‘여왕’은 자기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정식으로 배역을 맡지는 않았다. 다만, 영화 첫머리에 잠깐 등장해 대역 남정임(南貞姙) 양을 소개하기는 했으니, 어쨌든 출연이라면 출연인 셈이다. 남정임은 모두가 잘 알다시피 트로이카 하고도 제1세대. 스타의 이야기에는 스타가 출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훈훈한 캐스팅은 한국 음악 전기영화의 숨은 특징 같기도 하다.

출연 배우의 면면이 화려하기로는 ‘가요황제’ 남인수의 일대기를 그린 <이 강산 낙화유수>(1969년 개봉)도 뒤지지 않는다. 남인수 역을 맡은 김진규(金振奎), 남인수 말년의 연인 이난영(李蘭影) 역을 맡은 문정숙(文貞淑), 남인수의 본처 김은하(金銀河) 역을 맡은 이경희(李璟嬉) 등 눈에 익은 얼굴이 적지 않다. 1962년에 남인수가 세상을 떠나고 7년 뒤에 나온 영화이므로 앞서 본 두 작품과 달리 한결 객관적인(?) 묘사가 가능했을 것도 같은데, 역사적 사실과 영화 줄거리 사이의 간격은 의외로 큰 편이다. 허구적 상상력은 어느 정도 허용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달리 토 달기도 어려운 노릇이나, 아쉬움이 쉽게 떨쳐지지는 않는다.

캐스팅도 캐스팅이지만, 이들 영화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사실 음악이다. 음악 전기영화라면 인물에 대한 묘사·해석과 더불어 어떤 음악이 어떤 방식으로 영화의 완성도 향상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기여했는지, 거기에 영화 흥행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가요황제’와 ‘엘레지의 여왕’에 대한 영화의 음악적 형상화에는 다소 민망한 부분이 많다(‘가왕’의 경우는 영화를 보지 않았으므로 패스). 때로는 민망한 가운데 터져나오는 실소를 참을 수 없어 허허롭기까지 한 수준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음악적 감정을 충분히 표현해야 할 배우들의 연기가 간단한 립싱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어색한 금붕어가 돼버릴 정도라는 것인데, 1960년대 영화 제작 현장의 ‘속도전’을 생각해보면, 특정 배우의 연기력 문제라기보다는 당시 영화계의 구조적 문제라고 보는 편이 옳을 듯하다. <엘레지의 여왕>에서는 이미자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김명옥(金明玉)의 노래가 그나마 깜찍하기라도 하지만(그 명옥양이 무럭무럭 잘 자라 1980년대 <빙글빙글> 등으로 선풍을 일으킨 나미(羅美)로 다시 각광을 받았다), <이 강산 낙화유수>의 음악은 도통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남인수의 수많은 히트곡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곡들이 줄줄이 등장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주옥같은 그 노래들이 알고 보면 ‘짝퉁’이라는 것이 문제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남인수의 노래인 양 나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실 후배 모창 가수다. 시판되는 남인수 음반에 모창이 많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는데, 그 흔적이 영화에까지 미쳐 있으니, 모창치고는 참으로 대단한 모창이기는 하다. 모임에 자랑스럽게 걸고 나온 진주목걸이가 알고 보니 모조품이라고 드러난 꼴이라,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당시 영화계에 대한 측은한 감이 있다.

끝으로 꼭 붙이고 싶은 사족 하나. 김진규가 <이 강산 낙화유수>를 촬영할 당시 나이는 마흔일곱. 남인수는 그보다 젊은 마흔넷에 세상을 떠났는데, 김진규는 그 나이로 남인수의 열여덟 데뷔 시절까지 연기해버렸다. 지나치게 두툼하고 듬직했던 ‘열여덟 김진규’의 허리선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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