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세의 <개그맨>은 1980년대 한국영화사에 기록될 만한 데뷔작이다. 당시까지 한국영화가 도달하지 못했던 미답의 영역을 탐사한 이 선구적인 영화는 억압적인 군사정권이 예술적 상상력마저 말살하던 시대, 영화적 담화의 획일화가 현저했던 앙상한 상상력에 육중한 충격을 가했다. 발표 당시까지만 해도 <개그맨>은 불운을 양 어깨에 짊어진 영화였다. 변변한 논평의 대상이 되지 못했을뿐더러 대중으로부터 공정한 평가를 받을 기회마저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명절 특선 프로로 개봉하기로 계획했다가 할리우드 액션영화 <다이 하드>의 흥행몰이로 속절없이 자리를 내어준 <개그맨>은 해를 넘겨 개봉했으나 별다른 반향 없이 쓸쓸히 퇴장한다. 평단의 주목도 미미해, 시대정신이나 사회의식을 담은 영화가 당대의 주류로 득세하던 시절, 삼류 카바레 개그맨의 몽상적 탈주극에 눈길을 주는 평자는 없었다.
<개그맨>은 대부분 그의 영화가 그러하듯 이명세의 개성이 뚜렷이 새겨진 작품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주인공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에게서 영감을 얻었다는 인물들을 통해 이명세는 영화에 대한 그 자신의 관점을 총화하려 한다. 이야기는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언젠가 걸작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은 야간업소 개그맨 이종세(안성기)의 다소 망집에 가까운 행태를 따라가고 있다. 채플린처럼 콧수염을 기르고 영화 촬영장에 잠입해 기웃거리는 종세는 “명작이 없는 시대에 참다운 영화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공상에 사로잡혀 있다. 이발소 주인 문도석(배창호)과 극장에서 우연히 만난 오선영(황신혜)을 캐스팅한 종세는 마침내 꿈꾸던 걸작을 만들겠노라 꿈에 부푼다. 우연히 손에 넣은 M16 총으로 삼인조 은행털이의 탈주에 대한 영화를 찍으려던 종세 일행은 현실과 영화를 구별하지 못하고 실제 은행을 털었다가 희대의 범죄집단으로 TV 뉴스에 보도된다.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꿈, 욕망의 끝에 도달한 허무 속에서 종세와 친구들의 백일몽은 아이러니한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걸작의 시대는 갔다
탈주의 플롯이나 활력적인 반역의 에너지 때문에 <개그맨>은 <내일을 향해 쏴라>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류의 탈주극과 곧잘 비교되었지만 속사정은 많이 다르다. 폼 나는 인생을 꿈꾸는 전설적인 삼인조 강도쯤으로 자신들을 포장하지만 현실 속에서 저들은 양품점과 구멍가게를 터는 좀도둑에 지나지 않는다. 작중 인물 종세의 입을 빌려 “걸작의 시대는 갔다”라고 말함으로써 이명세는 당대 영화에 대한 주관을 요약한다. 주류 통념에서 비켜난 변두리 인생의 부조리한 비극 안에서 당대의 예술이 처한 조건을 발견하는 것이다.
하루 만에 간추린 스토리의 골자를 시나리오로 옮겨 28일에 걸쳐 속성 완성한 <개그맨>에는 당시 한국영화로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스타일과 양식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사건이나 극중 정황에 대한 살뜰한 설명이나 인물의 행위에 대한 동기화가 친절하게 제시되지 않는 이명세의 다른 영화들처럼, <개그맨 > 역시 드라마틱한 사건들의 맞물림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영화 전체가 꿈이나 몽상처럼 제시되면서 사회적 현실에 대한 경험을 표면에 내세우거나, 현실 그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당대의 영화적 경향과 완곡하게 단절하고 있다. 중심 테마의 완결성 없이 느슨하게 연결된 에피소드적 구성을 따라가는 이야기는 꿈인 듯 상상인 듯 애매하게 경계를 흐린다.
데뷔 초 이명세는 한국영화계의 미확인비행물체(UFO) 같은 존재였다. 그의 스타일이 이단으로 평가되었던 이유는 당시까지 한국영화계에 만연해 있는 리얼리즘 우위 경향과 무관치 않다. 사회 현실을 직접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고전적 리얼리즘의 핍진성의 원리가 영화 전반을 장악했던 시절 이명세는 영화 미학의 아집과 폐쇄성을 극복하려 했다. 영화가 현실 그 자체만은 아니며 영화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진실일 수 있고, 하물며 꿈이나 상상 같은 ‘의식의 진실’도 존재한다고 그는 믿었다. 완벽하게 리얼하다고 느껴지는 사고, 꿈, 판타지를 영화의 리얼리티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개그맨>에는 깃들어 있다. 리얼리즘이 거의 절대적인 가치로 추앙받았던 한국영화계에 이런 주장은 신선한 충격파를 던졌다.
리얼리즘의 모토를 거절한다
<개그맨>은 뒤늦게나마 새로운 상상력의 가능성을 본 이들에 의해 컬트적 숭배를 받았다. 이 영화를 통해 이명세는 현대의 영화들이 스스로의 작동원리를 상실하고 있지 않은지를 묻는다. 영화는 현실을 재생하거나 반영해야 하며, 적어도 있을 법한 이야기를 그럴듯한 방식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리얼리즘의 모토를 그는 단호히 거절한다. 종세의 몽롱한 바닷가(<개그맨> <지독한 사랑> 등 이명세 영화에서 바다는 초현실적 판타지 공간이다) 독백에서 이런 생각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세밀한 연출력과 상상력, 수공적 자의식으로 일군 <개그맨>의 주요 장면들은 한국영화에 부재했던 독특한 개성의 일단을 가리켜 보인다.
<개그맨>은 단순하고 유치한 몽상이나 연애, 자의식과 스타일의 과잉, 역사의식의 부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명세 영화의 출발점이자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첫 번째 대답 같은 영화다. 예술의 존재 기반을 회의하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또 그에 답할 수 있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혹은 정신적으로 경험한 현실을 어떻게 영화다운 방식으로 언어화할 수 있을 것인지의 단계로 이행했음을 의미한다. 현대 한국영화의 비약적 성장이 언어에 대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할 때, 작가로서 이런 성찰의 의미는 작지 않다. <개그맨>같은 돌연변이적 성운이 없었다면 1980년대 한국영화는 훨씬 단조롭고 빈약했을 것이다. 객관적 묘사를 전형적 샘플로 하는 리얼리즘이 다양한 방식으로 개조되고 있는 저간의 사정을 고려할 때, <개그맨>의 가치는 오래도록 퇴색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