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 : 사랑을 어떻게 하는 것인 줄은 모르지만 난 너를 좋아했었다. 지금도...
정옥 : 잔인하도록 차가운 당신의 피도 내게만은 따스했어요.
보스 : 그러면서도 나는 너를 처형하고 말았어.
정옥 : 이유야 어찌됐던 나는 죄인이었으니까요. 당신을 원망 안 했어요.
하지만...악의 길을 택한 당신을 저주해요.
보스 : 악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야. 내게 주어진 거야.
세상 어떤 누아르 영화가 이렇게 ‘멜로’와 밀착해 있을까. 보스 동일(장동휘)은 얼굴에 상처를 입고 쫓겨났던 부인 정옥(문정숙)을 다시 만나 부하들 몰래 별장으로 데려온다. 불 꺼진 방 안, 둘은 어색하게 사이를 둔 채 애정과 조직의 계율이 끈끈하게 얽힌 대사를 읊조린다. 음악 역시 빠지지 않는다. 이만희 영화에 늘 함께했던 전정근 음악감독 특유의 관현악은 방 안의 공기를 더욱 ‘멜로’적으로 상승시킨다. 가히 ‘멜로 누아르’라 부를만한 <검은머리>는 이만희 특유의 미장센도 훌륭하지만, 명대사의 향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이런 거다. 술은 “뭘로 하실까요.” 웨이터의 질문에 극중 택시운전수 이대엽의 대답, “독한 게 좋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