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시보기 현장은 안타까움이 먼저 느껴지는 자리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 박광정 씨가 자리에 함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움은 오랜 시간 마음을 울린다. 마음을 울리는 특별한 이야기를 보기 위해 관객들이 영상자료원을 찾았다.
무대인사를 위해 마이크를 넘겨받자마자 김태식 감독은 박광정 씨와의 추억을 이야기 했다. 박광정이 연기한 ''태한''의 아내 역을 맡았던 배우 조은지도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故 박광정은 지난해 10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일까? 관객들은 모두 그의 연기에서 그의 혼을 발견했다. 소심한 남자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는 데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그는 너무나 소심해 아내의 불륜 현장도 덮치지 못하는 ‘태한’ 그대로였다. 김태식 감독에게 어떻게 이 역할을 맡을 배우로 박광정이라는 사람을 떠올렸는지 물었다. 그는 좋은 배우 나쁜 배우에 대한 개념이 없이 느낌으로 배우를 찾는데, 박광정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리고 영화가 실제로 제작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를 만났고, 박광정 씨는 흔쾌히 이 역할을 하겠노라 했단다.
박광정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말이 없고, 진중한 사람이었다. 한창 촬영이 진행되던 어느 날이었다. 연기가 잘 안 되는지 박광정은 화장실 앞에 서서 담배를 물고 있었고, 그의 발 밑에는 족히 3갑분량은 되어 보이는 담배꽁초가 쌓여 있었다. 아직 배우를 달래는 방법을 몰랐던 김 감독이 “힘드시죠?”라는 말은 건네자,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 감독은 ‘좋은 배우라는 것을 그 순간에는 모르는 것 같다. 배우의 힘은 극장에서 확인된다. 영화가 개봉된 후 내가 정말 좋은 배우와 작업을 했구나. 첫 데뷔를 참 잘했다.’ 하는 생각을 했다며, 배우 박광정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다.
그리움이 남는 마음 한켠에 두고 이 영화가 가진 여러 매력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이크를 자리에 함께한 배우 조은지에게 넘겼다. ‘소옥’은 참 특이한 캐릭터다. 조은지는 그 특이함이 좋아 이 역할을 맡았다고 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자에게 상처받은 개인적인 경험도 살려가며… 그리고 아줌마라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이런 이유로 사무실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그녀는 촬영에 들어갔고 자신의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영화 속에서는 그녀는 한영애의 노래 ‘누구 없소’를 부른다. 그 장면에서 배우 조은지는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워 보인다. 그녀는 또 ‘소옥’이 되기 위해 헤어스타일부터 말투까지 자신을 다듬었다. 그래서 관객은 ‘소옥’이라는 인물이 매우 특이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더 몰입하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 많은 사람은 영화 속에 담긴 감독의 숨은 의도를 궁금해 한다. 그중 가장 많이 관객의 궁금증을 자아낸 것이 바로 수박이다. 김태식 감독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수박을 굴린 이유에 대한 질문은 받았고, 오늘도 그러했다. 그러나 김 감독의 대답은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사람들은 영화를 만들 때 감독들이 장면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 거라 많이 예상하시는데, 사실은 현장에서 우연히 떠오르는 생각이 좋은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해요. 수박도 그래요. 우연히 수박을 실은 트럭이 있었으면 했고, 깨진 수박을 보니 빨간 속이 예뻐 보였어요. 그래서 만들어진 장면이 수박을 굴리는 장면이었어요.” 멋쩍게 웃는 김태식 감독의 말에 솔직함이 묻어났고 객석에 소박한 웃음이 번졌다. 그러나 모든 것이 우연은 아니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의 시나리오부터 작업했던 김 감독은 ‘왜 두 사람이 사랑을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세 사람이 사랑을 하면 문제가 많을까’하는 사랑에 대한 새로운 고민에서 이 작품을 이어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편집이 다 된 이후 추가 촬영까지 하는 열정을 보이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만들었다.
김태식 감독의 이러한 작업의 결과가 오늘 다시보기 현장을 찾은 관객의 마음을 울렸는지 객석에서 여러 질문이 이어졌고, 김태식 감독과 배우 조은지는 영화를 찍으며 있었던 에피소드와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그 무엇에 대한 솔직한 답변으로 응했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통해 볼 수 있었던 감독과 배우의 좋은 모습은 다음 작품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이 자신의 새로운 매력을 표출할 수 있는 영화를 기대하며, 또 함께할 수 없는 이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에 담으며 9월의 다시보기 현장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