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당시 내 또래의 조무래기들은 천하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니 내일 시험을 볼지라도 <수사반장>이 방영되는 날이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더랬다. 나는 이종대, 문도석의 개머리판 없는 카빈총 강도 사건을 극화한 <내리막길>을 본 이후 <수사반장>의 열혈 팬이 되어버렸다. <수사반장>의 인기가 높아지자, 비슷한 형사 수사물, 범죄 드라마들이 방영되었는데, <수사반장>의 최불암, 조경환 조에 맞서는 이순재와 한진희가 나오는 <형사>, 이낙훈과 장용이 나오는 <추적>. 형사·범죄 수사물이라기보다는 간첩·반공 수사물인, 전운이 나오는 <113 수사본부>가 있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최고는 최불암이 나오는 <수사반장>이었고, 나머지는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었다. 당시 나의 불만은 왜 한국 영화는 <수사반장> 같은 멋진 형사 영화가 없을까? 왜 한국 영화 속에서는 최불암과 조경환 같은 멋진 캐릭터가 없을까? 알랭 들롱의 <리스본 특급>, 스티브 매퀸의 <블릿트>, 이스트우드의 <더티 해리>, 진 해크먼의 <프렌치 커넥션> 같은 멋진 형사 주인공이 나오는 한국 영화는 왜 없을까였다. 동시상영으로 본 <특별 수사본부> 시리즈는 대단히 재미가 없었다. 먼저 악당들로 나오는 간첩 또는 빨갱이들이 너무 멋이 없어서 박근형이 잡아도 그만 안 잡아도 그만이고, 뭐 항상 하는 그 타령이냐? 하는 심드렁한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형사 배삼룡>을 보고 범죄 형사 수사물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 튀김집 담벼락에 붙어 있는 포스터에 눈길이 갔다. 이낙훈, 서미경 주연의 <강력계> 포스터였다. 강력반 하면 뭐니뭐니 해도 최불암이 반장이어야 한다. 그런데 최불암의 <수사반장>에 한참 못 미치는 형사 드라마 <추적>의 이낙훈이 형사반장으로 나오는 영화여서 뭐 그냥 시큰둥하고 지나치려다, 당시 우리의 여신이었던 서미경이 주연이라 그러면 볼까 하고 잠깐 망설여서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가 바로 <강력계>였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나 어떤 일 때문에 <강력계>를 보게 되었다.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영화보다는 <선데이 서울>의 표지 모델로 요염한 반라의 뒷모습을 보여주어 어린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서미경의 모습이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미모일까를 가장 궁금해 하며 영화를 보았다. 영화 <강력계>는 역시 서미경은 아름다운 배우였다는 것을 확인하게 했고, 영화 또한 나의 예상을 벗어나는 재미를 주었다. 영화 제목만을 보고 나는 수사반장 이낙훈과 여경으로 서미경이 등장하여 강력사건을 수사하는 그런 영화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1976년에 만들어진 연쇄살인마에 관한 영화였다. ‘아, 이런 영화도 있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다가 문득 김인수 감독의 영화 목록을 생각했다. 그는 <고교 유단자> 같은 청춘 하이틴 영화와 <살꼬지> 같은 에로 영화도 만들었지만 <월녀의 한> <원한의 공동묘지> 같은 공포 영화에서 주로 자신의 장기를 발휘했던 감독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경찰 범죄 영화를 만들어도 역시 공포가 가미된 연쇄살인마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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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계>는 1970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입구로 진입하기 시작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시작된다. 서미경은 여대생이다. 사회의 전문인력이 되기 위한 공부라기보다는 교양 있고, 현명하며 정숙한 아내로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여자가 되는 것이 당시 여대생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고, 아마 교육도 그렇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약혼식을 코앞에 둔 여대 졸업반의 아름답고 발랄한 여성 서미경의 아버지 이낙훈은 수사반장이며, 그녀의 약혼자 민욱은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강력계의 형사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으로 마음이 부풀어 있을 때, 서울에서 젊은 여성들만을 골라 강간하고 살해하는 연쇄살인범 사건이 발생한다. 수사반장 이낙훈은 그의 뒤를 쫓는다. 연쇄살인범은 수사반장 이낙훈의 추적을 비웃으며 그의 딸인 서미경을 납치하여 강간하고, 그녀를 죽이지 않고 보란 듯이 풀어준다. 강간을 당한 서미경은 연쇄살인마의 마수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계획하거나, 꿈꾸었던 모든 것은 훼손되어버렸다. 그녀의 어머니는 약혼을 앞두고 있으니 사실을 숨길 것을 강요하고, 이낙훈은 사건을 수사하는 책임자의 입장과 강간당한 딸의 아버지의 입장을 두고 고민한다. 세상의 여자들이 연쇄살인마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딸의 협조가 필요하지만, 정조를 유린당한 딸의 상처를 숨기기를 원하는 1970년대의 아버지가 충돌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서미경의 아버지이자 수사반장인 이낙훈과 사건 담당 형사이며 약혼자인 민욱이 서미경에게 하는 사건 협조 부탁은 서미경에게 또 다른 강간을 하는 듯한 느낌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초기 단계였던 1970년대 중반, 현명하고 정숙한 아내가 되는 것이 여성 교육의 목표였던 시대, 잘 가꾸어진 딸이 유린당하고, 그 딸을 유린한 사람을 정신병자로밖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당시의 상황이 영화 속에 들어있다. 주인공들은 이 이상한 유형의 범죄에 대해 어떠한 판단도 못하고, 단지 정신병, 변태성욕으로만 규정하고 공포와 분노에 떤다. 2009년 대한민국에는 여성을 증오하는 남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제 세상은 남성들의 육체노동을 존경하지 않게 되었다.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근육을 꿈틀거리며 노동을 하여 가정을 이끌어가던 남자들의 노동은 더 이상 힘든 노동만으로는 가정을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가치를 잃어버렸다. 그들이 하는 일을 자동화된 기계가 대신하고, 책상 앞에 앉아서 땀을 덜 흘리는 일이 선호되고, 생산노동보다는 서비스업이 발달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가 된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노동력은 동등하다. 자본은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서 남자들만으로는 더 이상 발전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여성들이 일하는 세상이 되었다. 여성들은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남성들과 대등한 자리에 올랐다. 시장은 여성들이 소비자로서 자본을 움직이는 가장 매력적인 바퀴임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남성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여성들이 밀고 들어와 차지해버렸다는 불만과 언제 여성들에게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이고, 자신들은 여성들에 비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증오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증오는 폭력을 부르고 가장 약하고 손쉬운 대상인 여성들에게 증오의 칼날을 들이대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문제에 대한 성찰은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76년에서 별로 못 벗어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수컷인 나 역시 그런 성찰을 하기에는 근본적으로 무기력하거나 무능하다. <강력계>는 깨끗한 상태의 프린트와 네거티브 필름이 잘 보존되어 있는 영화다. 어마어마한 걸작은 아니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