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다시보기 2주년 기념 ‘박찬욱 감독전’이 열렸다.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부터 최근 칸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박쥐>까지 박찬욱 감독의 전작 총 10편을 상영한 이번 행사는 배우만큼이나 관객의 관심을 받고 있는 박찬욱 감독의 인기를 다시금 실감할 수 있는자리였다. 8월 8일에는 <복수는 나의 것>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가 마련되었다. 이 자리에는 초대손님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 이외에도 영화촬영을 하다 달려온 깜짝 게스트 신하균도 함께했다.
<복수는 나의 것>은 당시로선 일반 관객이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새로운, 혹은 날이 선 영화였다. 관객 16만4100명이라는 수치(영화진흥위원회 통계자료)가 보여주듯 2002년 개봉 당시 이 영화는 대중에게도 언론에서도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진행을 맡은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먼저 감독에게 7년 만에 관객과 다시 만나게 된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이날 관객과 함께 영화를 다시 본 박찬욱 감독은 “이제는 덜 이상한 영화로 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이상한 기운은 오늘도 여전해서 당황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송강호 역시 함께 출연했던 신하균, 배두나에게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빨리 다음 영화를 계약해놓으라고 농담할 정도로 흥행에 대한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참담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박쥐>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영화 세계를 고집한 감독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며 박찬욱 감독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이어 박 감독은 “복수 3부작이라는 이름으로 해외에 알려지면서 조금씩 수출이 됐고, 지난달 드디어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는 소식을 배급사로부터 들었다.”고 밝혀 관객으로부터 축하의 박수를 받았다.
<복수는 나의 것>은 감독의 전작 <공동경비구역 JSA>(이하 ‘JSA’)와 현격히 대비되는 작품이다. 이동진은 라는 이른바 웰메이드 영화의 흥행 이후 이런 ‘괴작’을 만들 때 어떤 원칙을 염두에 두었는지 물었다. 박찬욱 감독은 “는 감성적으로 만들었다. 이후 좀 비정한 영화를 찍고 싶어졌다. 다시 말해 관객의 감정이입을 차단하는 영화, 객관적 눈으로 지켜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복수는 나의 것>은 음악과 편집까지 모두 그렇게 의도하고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 영화는 시네마스코프로 촬영했다. 폭력 신에서 그 넓은 사이즈가 주는 빈 공간과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커팅으로 관객의 마음을 불안한 상태로 몰아가고 싶었다.”며 폭력이 행해지는 공간에 대해 강조했다.질문은 두 배우의 연기 쪽으로 옮아갔다. 서민적이면서도 코믹했던 그간의 캐릭터와는 180도 다른 냉소적 역할을 맡았던 송강호는 “지금 다시 영화를 보니 더 냉소적으로 연기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만약 그랬더라면 흥행이 더 안 됐을 것 같다.”며 관객에게 웃음을 주었다. 반면 대사를 구사할 수 없는 농아 연기를 한 신하균은 “감독은 건조한 연기를 지시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저 젊은 기운으로 해내지 않았나 한다.”며 제한된 표현 범위에서 연기한 어려움을 기억해냈다.
이날 GV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 토픽 중 하나가 바로 영화의 엔딩이었다. 라스트 신인 무정부주의자 동맹의 느닷없는 복수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박찬욱 감독은 실제 엔딩은 여러 엔딩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감독은 “실제 엔딩은 모두가 반대했는데, 당시 <살인의 추억>을 준비 중이던 봉준호 감독이 찬성해 믿고 밀고 나갔다.”며 그런 마무리로 관객에게 말하고자 한 바에 대해 “관객은 권위자가 언술한 것을 사실이라고 쉽게 믿는 경향이 있는데, 난 다른 결론을 내고 싶었다. ‘영미’(배두나 분)의 경고를 무시한 관객이 놀라움이나 의구심을 갖길, 그리고 그 느닷없는 사람들에 대해 관객이 여러 생각을 해보길 원했다.”라고 설명했다.
“너 착하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라는 어불성설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질문은 자연스럽게 영화의 주제로 이어졌다. 영화의 영문 제목은 ‘Sympathy for Mr. Vengeance’이다. 말 그대로 이 영화는 두 남자의 서로에 대한 동정, 공감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은 “둘은 똑같은 일반 사람들이지만 사회에서의 위치나 시스템으로 인해 이런 결과로 운명지어진 것이다. 공통적으로 복수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들 사이의 공감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관객과의 대화 당일, 스타들의 방문 소식에 관객이 많을 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계단에 앉아야 할 정도로 관객이 밀려들어 좀 놀랐다. 이날 감독에게 영화란 무엇인지, 그리고 배우에게 배우란 어떤 직업인지 묻는 한 관객의 질문에 박찬욱 감독은 “영화란 세상과 대중문화가 잘 보지 못하는 심연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라고 했고, 송강호는 문성근의 말을 인용해 “배우는 우리가 이 거대한 조직 속에 살면서 잊고 있던 얼굴들을 새로이 찾아주는 직업”이라고 답했다. 현재 송강호는 <의형제>, 신하균은 <카페 느와르>, 박찬욱은 <설국열차>(제작)에 각각 참여 중이다. 이 작품들을 통해 그들의 소신이 스크린에 한껏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아울러 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가 ‘상업영화로 편중돼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영화들을 상영하고’, ‘잊고 있던 감독과 배우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공간으로 오래 남아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