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희 감독의 <휴일> (1968)

by.배주연(상상마당 시네마 프로그래머) 2009-07-09조회 1,433
휴일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나면 확신으로 가득 찬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적이 있다. 오래전 일이지만 말이다. 그것이 환상임을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그때 받은 충격은 꽤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어린 날 보았던 ‘어른들’의 이야기가 왜 그리 불안함 투성이었는지, 이제 제법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불안이 치유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불안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영화에서 그런 불안한 기운과 마주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영화 <거긴 지금 몇 시니?>에서 <400번의 구타>를 보던 이강생이 그랬던 것처럼 방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훌쩍거릴 수밖에 없다. 너무 무섭기 때문이다. 그것이 매일같이 마주해야 할 삶의 진짜 공포다.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을 보았을 때의 충격 역시 그 끝을 알 수 없는 불안함과 피로, 방향 상실, 패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난한 연인인 허욱과 지연은 일요일에 데이트를 한다. 지연은 임신 6개월에 접어들었지만 돈이 없는 이들은 수술도 결혼도 결심하지 못한다. 허욱은 허세만 부릴 뿐 무기력하기 그지없다. 어느 일요일 지연의 굳은 결심으로 결국 허욱은 수술비를 구하러 가고, 먼지바람 속에 지연은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재치 있는) 거짓말과 무임승차, 절도, 거기에 더해 당시로선 혼전 임신과 낙태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었음에도, 이상하리만치 두 주인공에게 ‘통상적’ 윤리의식을 묻기는 어렵다. 세상이 진심이 아닌데 “그게 뭐가 잘못되었나요?”라고 오히려 되묻는 듯하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은 도시의 곳곳에, 밤거리의 바에서,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어느 교회당 앞 언덕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모던의 피로함과 권태라는 점에서 이상의「날개」와 닮았지만, 이만희 영화 속 주인공은 도시의 관찰자가 아니며, 태생적 무력함이 아닌 무력함을 극복하려 허세를 부렸든, 밤길의 헌팅이 되었든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둔다. 그로 인해 결국 더 큰 절망을 얻게 된다 하더라도.

이만희 감독의 영화에서 이런 기운은 적잖게 등장한다.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무언가와 맞서 싸우기엔 무력하고, 그렇다고 초탈하며 살기에는 잃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바다로 가려던 소녀는 바다로 가는 것이 자꾸만 유예되고(<태양을 닮은 소녀>), 아내의 데이트를 알고서도 불구의 남편은 직접 말할 수가 없으며(<귀로>), 벼랑 끝에서 만난 사랑은 결국 무위로 끝나고 만다(<원점>). “자넨 넥타이 매고 점잔 빼는 높은 양반들의 말을 아직도 믿나?”라는 친구의 질문에 “믿을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지 않나.”라는 허욱의 말처럼 한번 내지를 수도 없고, 달리 어찌할 도리도 없으니 진실이 아니래도 믿는 척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체념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아무렇지 않다고 진심으로 믿는 것과 불안의 요소를 알고서도 믿는 척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진실한 이야기는 바로 그 순간에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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