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을 나서면서 기분이 상쾌해지고 살며시 미소를 짓게 하는 영화가 있다. 지난해 가을 개봉한 이윤기 감독의 작품 <멋진 하루>도 바로 그런 작품 중 하나다. 봄기운이 무르익은 5월 어느 날, 기분 좋은 토요일 오후를 즐기기 위해 관객들은 영상자료원을 찾았다.
<멋진 하루>의 상영이 끝난 후, 이윤기 감독과 최상호 촬영감독이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다시보기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이번에도 그만의 화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는 먼저 원작이 있는 작품을 각색의 어려움이 있음에도 장편영화로 만든 계기를 물었다.
이윤기 감독은 어느 날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한구석에 외롭게 놓인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고 했다. 「멋진 하루」라는 제목을 보고 막연히 이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겠거니 하는 생각에서다. 기대했던 대로 이 단편 소설집에는 착한 사람들의 어리숭하고 따뜻한 동화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기회가 있으면 영화로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했고 결국 실행에 옮겼다.
이윤기 감독이 소설집 「멋진 하루」를 영화로 만든 것은 「멋진 하루」가 처음이 아니다. 같은 소설집의 단편인 「에드리브 나이트」라는 작품을 가지고 이미 <아주 특별한 손님>을 만든 바 있다. 그리고 좋은 기회를 통해 그는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던 원작을 자신의 이야기로 각색해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만들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윤기 감독은 로드무비는 스태프들을 공포 상태로 몰아넣는 영화라며, 제작 당시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한 번 촬영했던 장소로는 다시 가지 않았어요. 로케이션은 영화 내용에 맞는 느낌이 있는 곳이어야 하고, 또 동화적인 느낌도 있어야 하는데, 서울에서 그런 장소를 찾기 힘들어서 발품을 열심히 팔았어요. 또 촬영 여건도 고려해야 하니까 다른 영화에 비해서 처절하게 많이 걸렸습니다.”
딱 하룻동안 있었던 일을 다루는 영화라도 보통 촬영하는 데 두세 달 걸린다. 그래서 날씨 같은 것을 통일성 있게 유지하기는 힘든 일이다. 최상호 촬영감독에게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물었다. “사실 시간대를 다 계산하지는 못했고 큰 덩어리로 묶어 생각했어요. 인물의 심리나 사연을 밝힌 상태에서 영화가 시작되지 않기 때문에 초반에는 인물들을 그늘 속에 넣었고 배경에만 겨울 햇살이 밝게 터지게 했지요. 그러다가 시간이 가면서 두 인물의 마음이 풀어질 때 주인공들을 햇빛 속에 드러내고 저녁에는 노을로 들어가게 한다는 큰 덩어리는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했지만 로드무비의 성격에 맞게 멋진 배경을 만들기 위해 두 사람이 들인 노력이 느껴졌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희수가 병훈을 찾아간 이유, 바로 ‘돈 350만원’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동진은 이 작품에서 ‘돈’이란 말이 예순한 번이나 나온다며, <멋진 하루>에서의 돈을 의미에 대해 물었다. “치사한 건데요. 지금 현실에서 희수가 병훈이라는 남자를 생각하며 찾아갈 때 애매한 돈이 얼마일까 고민했고, 버리기는 아깝고 달라고 하기에는 치사한 액수가 350만원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정했어요.” 이윤기 감독은 돈 이야기라 약간은 멋쩍은 듯 우스갯소리를 하며 말을 이었다. “만약 저라면 헤어진 애인에게 돈을 갚으라고 찾아갈 일은 없을 거예요. 돈을 꿔달라고 하면 바로 헤어질 테니까요. 하하”
<멋진 하루>가 개봉할 당시 화제가 되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배우 전도연이 출연한다는 것이었다. 전도연이 <밀양>으로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타고난 후 바로 선택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배우가 된 그녀의 향방을 궁금해 하던 사람들은 조금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사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헤어진 애인을 찾아가는 여자 주인공 희수가 아니라 너스레를 잘 떠는 병훈이기 때문이다. “전도연 씨는 스스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연기했어요. 하정우 씨가 병훈을 빛낼 수 있게,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게 만들어준 배우였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병훈이만 동동 뜰 수 있는데 그래서 전도연 씨가 필요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이 배우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힘이 느껴지기도 했지요.” 이윤기 감독에게 전도연이라는 배우는 촬영 내내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배우였다. 배우 하정우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하정우 씨는 실제 병훈보다 더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저랑 하정우 씨라 만담을 주고받아서 전도연 씨가 화를 낸 적도 있는데, 하정우 씨는 현장에서 장난도 심하고 심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머리가 좋아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더 잘 만들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감독 이윤기와 배우 하정우는 정말이지 죽이 잘 맞았는지 삼류 모델과 작사가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이 감독의 다음 작품에도 하정우가 주연을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감독의 파트너 최상호 촬영감독도 이 작품에서 다시 한번 손발을 맞추기로 했다.
스스로 ‘마초’라고 하지만 여자의 심리를 잘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줄 알고 장면에 어울리는 배경 찾기에 집착하지만 이를 ‘취향’이라고 표현하는 이윤기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5월의 다시보기 프로그램은 관객과의 대화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