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철 : 두수야 저길 좀 봐봐.
저 장관을 이룬 즐비한 고층건물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겠니? 모두가 피와 땀이 이루어 놓은 기적이야. 나는 비탈진 언덕길을 오르내리면서도 한번도 힘든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어.
발길은 가볍고 마음은 늘 무럭무럭 자라지.
난 열심히 공부해야지. 어서 자라야지. 그리구 저 많은 삘딩숲속에 뛰어들어 주인공이 되어야지. 늘 이렇게 결심한단다. 가난은 결코 수치스러운 게 아냐. 다만 불편할 따름이지. 얄개야 우리에겐 밝고 희망찬 내일이 있어. 그 풍요한 내일의 세계를 이룩하려면 학생시절 에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두수 : 자식 다시 봐야겠는데, 공부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이게... 호철아!
어릴 적 텔레비전의 명절 단골 프로그램이었던 <고교얄개>는 1970년대 한국영화사를 침체의 시기로 뭉뚱그리는 걸 무색하게 만들 만큼 요모조모 참 잘 만든 영화다. 하지만 이런 대목들이 끼어드는 순간을 보고 있자면 곧 사회의 역군이 될 학생 자원까지 통제하려는 당대 국책의 욕망을 짐작하게 만든다. 호철(김정훈 분)의 ‘일장연설’에 이어, 도심의 빌딩 숲은 구름 사이를 뚫고 나온 햇빛을 받아 찬란히 빛나고 메인 테마곡마저 서부극의 분위기로 장엄하게 변주되는 이 순간, 말썽꾸러기 두수(이승현)는 바람직한 학생이 되자고 새로이 각오를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