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란 참 희한한 것이어서 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막장의 느낌이 들 때에, 어느 한 구석에서 수상한 싹이 자라는 법이다. 1984년 이장호 감독의 심각한 장난기로 가득 찬 영화 <바보선언>은, 영화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스포츠에만 올인하는 사회에 절망한 영화감독이 “활동사진 사망!”이라고 외치며 투신자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1980년대는 그런 시대였다. 컬러 텔레비전에 밀리고 검열에 찌든 영화는 갈 곳을 잃고 모두 ‘에로’만을 향하고 있었고, 1960년대에 화려하게 꽃피었던 영화 장르들은 모조리 말라버렸다. 사극은 ‘한복 벗기기’의 독특한 매력에 힘입어 겉보기에는 활발히 제작되었으나, 영화의 관심은 역사가 아니라 치마 속에 있는 것 같은 작품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장르영화들이 고사한 1980년대가, 한국영화사상 작가주의적 감독이 가장 화려하게 활약했던 시대라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임권택, 이장호, 배창호, 하명중에 이어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라 불리는 장선우, 박광수, 장길수가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였다. 여기에 스타일리스트라 불리는 이명세, 곽지균까지 더해 1980년대 감독의 면면은 어느 시대 못지않게 화려하다. 1992년 <결혼 이야기>(김의석 감독) 이후 대중적인 영화시장이 회복되고 장르영화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으면서 오히려 작가주의적 감독의 영향력은 훨씬 줄어든다.
1980년대 사극에서도 작가주의적 감독들의 활약은 꽤나 눈부셨다.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1986), <연산일기> (1987), 이장호 감독의 <어우동>(1985)에다, 식민지시대를 다룬 하명중 감독의 <땡볕>(1984), <태>(1986)를 우선 꼽아야 하고, 여기에 작가주의적 감독이라 하기는 다소 저어하게 되지만 해외영화제 수상작인 이두용 감독의 <물레야 물레야>(1983)까지 넣으면 결코 적지 않은 편수다. 이들 작품들도 역시 한복 벗기기에 골몰하는 것은 다를 바 없지만, 적어도 그것 이상의 것을 지니면서 작가의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들 중 완성도로 보나 작가적 색깔로 보나 가장 손꼽을 만한 작품은 <어우동>이 아닐까 싶다. 방기환의 소설을 바탕으로 희곡작가 이현화가 섬세하게 짜놓은 시나리오가 튼실하고, 여기에 이장호 특유의 과감한 영상언어와 사회비판적 날카로움이 가미되었다. 이후 전국 나이트클럽에서 ‘어우동 춤’이 유행했을 정도로 이 작품은 기기묘묘한 각도와 상상력으로 치마 속 속살을 드러내어 많은 사람의 뇌리에 에로영화로서만 기억되는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의미 충만하면서도 깔끔한 이미지로 대사 없이 이어지는 어우동의 끔찍한 새색시 시절 장면, 유교적 명분과 권력으로만 움직이는 지배계급 남자들을 발과 엉덩이로 깔아뭉개는 듯한 수많은 도발적 장면들(경호원들의 삼엄한 경호 속에서 임금이 어우동의 발 밑에서 발가락을 빠는 장면이 대표적이다)을 생각하면, 이 영화를 이장호의 대표작으로 추어올려도 손색이 없다고 할 만하다.
확실히 1980년대의 영화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도가 명확했다. 에로틱한 장면으로 눙치면서도, 제5공화국 정권에 대한 불만과 그로 인한 정치적 관심의 고양은 고스란히 영화에도 나타나고 있다. <어우동>뿐 아니라, 식민지시대를 소재로 한 하명중의 <땡볕>과 <태>도, 1970년대 토속에 대한 영화적 관심을 계승하면서도, 지주와 고리대금업자 아래에서 밥과 생명을 보존하지 못하는 민중의 고통을 훨씬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1970년대와는 다르다.
이들 두 작가가 1970년대의 청년문화 속에서 성장한 작가들이라면, 1960년대 영화계에서부터 오랫동안 기술을 연마해온 임권택의 상상력은(이두용이 그러하듯) 확실히 1960년대 영화를 계승하고 있다. 1960년대 신상옥 감독이 개화시켜놓은 여인 잔혹사의 발상은 이두용의 <물레야 물레야>, 정진우의 <자녀목>을 거쳐, 임권택의 <씨받이>에 이르러 가장 정돈된 모습을 보여준다. 정사 장면에 몰입하는 관음적 카메라는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유교적 명분에 집착해 산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모르는 양반들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힘없는 씨받이의 대비가 나름의 균형감을 이루고 있다. 한편 <연산일기>는 1960년대 왕조사극을 계승하는 한편 1980년대 텔레비전 사극의 괄목상대할 만한 성과를 대폭 수용해 안정감을 확보하고, 논리적으로 납득 가능한 입체적인 연산 캐릭터를 창조하는 데에 성공했다. 20세기 후반 한국 최고의 햄릿 연기자인 유인촌의 연극적인 연기가 이에 한몫을 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1980년대 임권택에게 이들 사극 영화가 <길소뜸>, <만다라>, <아제아제 바라아제>만큼 작가주의적 성취가 뚜렷하다 할 수 없지만, 이를 통해 그는 1990년대 <서편제>, <춘향뎐>, <취화선> 등으로 이어지는 행보를 할 힘을 키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