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에 개봉한 <사과>는 제작진에게나, 관객에게나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사과>는 2005년에 완성됐으나, 3년 동안 창고에서 잠잤고, 개봉하기 무섭게 간판을 내려야 했던 비운의 수작이다. 빠른 걸음을 재촉하며 들어온 이동진 씨는 늦은 이유를 밝히며 ‘사과’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는 도중 도로에서 기름이 떨어져 늦었다는 말에 극장 안은 한바탕 큰 웃음이 번졌다.
<사과>는 시나리오를 만들기 전에 53명을 인터뷰해 사랑과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했다는 사실로 화제가 됐다. 시나리오를 직접 쓴 강이관 감독에게 이유를 물었다. 강이관 감독은 “외국의 멜로영화를 보면 너무 좋은데, 정작 우리가 사랑을 할 때에는 도움이 안 돼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우리의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여러 번 만나면서 그의 전체적인 사랑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사랑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들에 주목했어요.” 강 감독의 이런 노력 때문인지 <사과>는 사랑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배우들의 연기 속에 스며들어 있다. 이동진 씨는 두 주연배우에게 각각 맡은 배역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문소리 씨가 말을 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저를 많이 울렸던 작품이에요. 배우 문소리가 아니라 인간 문소리를 가장 많이 투영한 작품이기도 해요. 그래서 그런지 설렘, 열렬한 사랑, 미움….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있어요.” 문소리가 이제까지 연기했던 배역은 매우 강한 느낌이 나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사과>의 문소리는 달랐다. 평범하면서 애교가 많은 귀여운 여성의 모습이었다. 문소리 씨의 애교를 보고 촬영장의 스태프들은 지금까지 어떻게 숨겨왔느냐며 놀라워했단다. 그러나 문소리 씨는 태연하게 “남편이 평소 저랑 너무 똑같았대요.”라고 하며 상영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현정 옆에서 그녀를 돋보이게 해준 상훈이 있었다. 상훈을 연기한 김태우 씨에게 물었다. 이동진 씨는 “상훈이라는 인물은 그냥 보기에는 좀 찌질해(웃음) 보이는데 이런 상훈을 어떻게 형상화 하려고 했었나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시나리오를 보고 좋았던 것은 인물들이 다 이해가 된다는 점이었어요. 모두 공감이 가는 캐릭터였고, 저는 사실 상훈이란 캐릭터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연기하면서 중점을 둔 것은, 상훈이보다는 현정이라는 인물이었어요. 관객에게 영화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현정을 잘 받쳐주어야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연기지만 현정이와 밀착되어 진짜처럼 하려고 했어요.” 배우 김태우는 영화 전체의 밸런스를 고려하는 연기자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는 답이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영화의 결말에 대해 의문이 많다. 영화의 결말. 마지막 장면 이후에 두 인물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는 질문에 강이관 감독은 “잘 모르지만, 그 장면에서는 두 사람이 앞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저런 모습으로 둘이 잘살지 않았을까요?”라며 뒷이야기를 관객의 상상에 맡겼다. 문소리 씨는 사실 편집본에는 빠져 있지만 둘이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엔딩 다음날 아침 장면을 촬영했었다며 주인공의 행복한 결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왜 이 촬영 장면이 영화에서 빠졌는지에 대해 강이관 감독은 “러닝 타임의 압박도 있었고, 사실 희망도 정도가 있는데 앞에 나온 내용과 영 다르게 갑자기 너무 해맑게 끝나는 것이 어울리지않을 것 같기도 했어요. 그리고 새벽녘의 모습이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엔딩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이어서 관객의 질문 시간이 돌아왔다. 이 영화의 제목 ‘사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질문에 강이관 감독은 제목을 지을 때 관객이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주기를 바라며 지었다며, 사랑이 연두색 사과 모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서로 사과하는 내용이 있고 해서 영화 전체를 대변해주는 것 같아 <사과>가 제목이 되었다고 했다. 또 사랑에 대한 성숙을 다루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거창한 의미보다는 ‘사랑에 대해 좀 더 알게 된다’ 정도의 느낌으로 사랑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다루었다고 말을 이었다. 감독과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과>가 만들어질 때 배우와 스태프들이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지 알 수 있었고, 그래서 영화의 사랑 이야기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 오늘 다시보기 현장에 참여한 사람들은 덜익어 상큼하면서도 떫은 연두색 사과를 볼 때마다 영화 <사과>를 떠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