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속의 여자>(1969, 박종호), 여성의 육체에 새겨진 70년대식 우울 걸작의 재발견

by.조준형(한국영상자료원 연구부) 2009-03-17조회 1,527
벽속의 여자

박종호는 한국영화사 연구계에서조차 그렇게 많이 알려진 감독은 아니다. 그는 뚜렷한 흥행감독도 아니었고, 개별 작품들 중 소위 정전의 반열에 든 영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종호 감독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연출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몇몇 영화는 후대에 재발견되기도 하였다. 특히 <벽속의 여자>는 박종호 감독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며 서울에서만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함으로써, 흥행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영화이다.

<벽속의 여자>는 한 여대생을 중심으로 한 삼각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미지(문희)는 오랜 기간 사귀었고, 이제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 성민(남진)이 있다. 하지만 그는 교통사고로 인해 성불구에 빠진 상태이다. 미지는 성민을 사랑하지만, 육체적 욕망에 목말라한다. 그러던 그녀는 어느 날 만난 한 중년 남성(허선생, 남궁원)과 충동적으로 섹스를 하게 되고, 이후 그녀는 성불구로 인한 좌절감으로 시들어가는 성민과 가정이 있는 허선생 사이를 오가며 혼란스러워하다 결국 둘 모두에게 이별을 고한다.

이 영화가 당시 한국 사회에서 화제가 되었던 것은 무엇보다 감독이 외설죄로 기소되었다는 데 있었다. 1965년 유현목 감독이 <춘몽>으로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외설죄로 기소된 이후, 이 영화는 신상옥의 <내시>, 이형표의 <너의 이름은 여자> 등 1960년대 후반 몇몇 영화들과 함께 외설죄로 검찰의 기소를 받았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벌이는 5분 동안의 애무가 지나치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물론 이 장면은 대폭 삭제된 채 개봉되었다.

한국영화사에서 1960년대 후반 돌연 나타나는 성적 묘사(여성 신체 묘사)의 확대 경향은 부분적으로는 영화산업 자체가 요구한 바기도 하였다. 이른바 ''TV 쇼크''(TV의 보급 확대로 인한 영화산업의 침체 현상)에 대응하기 위하여 영화 텍스트의 표현 방식에 변화를 주는 것은 영화산업의 일반적인 전략이었고, 그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 섹스와 폭력(혹은 범죄)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의 사례를 생각해 보자면 섹스와 폭력은 처음에는 젊은 남녀가 주인공이 되는 청춘영화 장르(태양족 영화)에서 먼저 시도되고, 이후 액션 활극이나 전통적 멜로드라마로, 그리고는 에로 혹은 포르노라는 특화 장르로 진화했다.

1960년대 초중반 청춘영화, 그리고 60년대 중후반에서 70년을 전후한 시기 에로티시즘의 전면화 과정을 통해 한국 역시 세계영화사의 일반 루트를 따르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독자적인 장르나 컨벤션을 형성할 정도로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는데, 물론 가부장적 군사 정권의 검열 때문이다. 따라서 <벽속의 여자>를 포함한 1960년대 후반의 외설 논란은 예술사 일반의 관행으로 이어져온 예술가와 정권 사이의 오랜 역사를 가진 권리 다툼(표현의 자유를 둘러싼)일 뿐 아니라, 한국영화사(나아가 예술사)에서 최초로 발생한, 각자의 생존과 영향력 유지를 판돈으로 한 개별 사회 부문(문화산업과 정권 혹은 시장과 정권) 사이의 구조적 갈등의 소산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1970~80년대 한국의 군부 독재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에 나왔던 많은 영화들이 일종의 병적인 증세를 동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잉된 음악, 감정의 무절제, 내레이션 장치로 대표되는 과도한 자기 성찰적 장치 등은 1970~80년대 한국영화 센티멘털리즘의 전형적인 컨벤션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관습들이 당대 한국인들의 의식·무의식을 지배한 자기 폐쇄와 자기 연민이라는 임상심리적 질환의 미학적 징후라고 생각하더라도 지나친 과장은 아닐 것이다. 사회적 무력함과 자조, 젊은 세대의 출구 없음이 외향적으로 나타났던 장르가 일본의 태양족 영화를 한국식으로 번안한 1960년대 초중반의 청춘영화라면, 70년대의 청춘영화는 역으로 내향성 또는 자포자기의 형태로 나타난다. 완벽한 파쇼화를 향해 진행되는 1970년을 전후한 시기의 군부독재가 1960년대에 가능했던 제한적인 희망마저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벽속의 여자>에서는 앞에서 말한 1970년대 청춘영화의 감정 과잉적 표현장치와 내향성이라는 멘털리티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이상의 1970년대식 임상심리적 병리학을 교통사고로 인한 성불능이라는 직접적인 육체적 증상으로 풀어낸다는 점인데, 젊은 남성의 불임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주요한 테마가 되었던 듯하다. 요컨대 이 영화는 불임을 직접적인 섹스의 문제로 끌어오면서 한국사회의 닫힌 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를 통해 <벽속의 여자>는 젊은 여성과 중년 남성의 사랑 혹은 섹스, 이를 통한 젊은 여성의 성장, 무력하거나 바보스러운 젊은 남성이라는 1970년대 청춘영화의 장르 공식을 선취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인물 설정, 꿈과 환상 등 주관적 씬의 빈번한 등장, 극중 인물의 내레이션, 현학적이고 문학적인 대사 등 표면적으로 예술성을 강조하는 듯한 다양한 장치를 설정한다는 점이다. 특히 아마추어 연극배우인 성불구 남자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오델로를 통해 투영되는 것과 같은 구성은 감독의 예술에 대한 강박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이러한 장치들이 다양한 각도로 읽힐 여지가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겠지만, 외설이라는 비난 가능성을 예술성으로 우회하기 위한 전략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1980년대 초중반 한국영화의 절반 가까이를 점한 장르인 에로영화들은 이러한 전략을 노골적이고 극단적으로 추구했다(1980년대 상당수의 에로영화의 주인공은 중산층의 여성 지식인 캐릭터이며, 대사는 과도할 정도로 현학적 혹은 문학적이다). 또한 남편 혹은 남자친구의 성불능은 여성의 일탈을 정당화하기 위한 기제로 1980년대 에로영화에서 가장 많이 활용된 설정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1980년대 에로영화 컨벤션의 창안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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