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4일. 김수현 작가의 영화 데뷔 40주년을 맞이하여 기획된 김수현 특별전의 부대행사로 대담 ''김수현을 말한다''가 진행됐다. TV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에 출연했던 배우 김상중이 진행을 맡고, <어미>, <눈꽃> 등에서 함께 작업을 했던 박철수 감독과 소설 『겨울새』를 원작으로 드라마를 썼던 이금주 작가, 그리고 드라마평론가 윤석진 교수 등이 패널로 참가하여 김수현의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40년이라는 세월 동안의 작품활동을 2시간 남짓의 대담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을 겁니다. 그래도 이런 자리를 통해 우리가 김수현 선생님의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을 않을까 생각됩니다." 진행을 맡은 배우 김상중이 대담의 의의를 짧게 밝히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첫 질문은 작품의 매력에 관한 것이었다. 이금주 작가는 "스토리에 맞는 캐릭터가 아니라 캐릭터가 만들어가는 스토리를 쓰는 것, 소소한 조연에게까지 입장과 상황을 부여하는 것이 김 작가의 힘"이라고 답했다. 박철수 감독은 회고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방송국 PD 시절 배우 윤여정의 복귀작이자 문제작이었던 <어미>의 영화 감독으로 김수현 작가를 만났다. 영화는 호평을 받았고 대종상까지 수상했지만 촬영 이후 김 작가로부터는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고 고백해 객석에서 웃음이 일었다. 박 감독은 김 작가의 스타일이 힘이라며, "일상적 위트"와 "역설과 억설의 언어 미학", "일상성의 디테일함"을 꼽았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가족이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늘 ''대가족''이 등장한다. 김상중 씨는 김수현 작가에게서 직접 들었던 작품에서의 대가족의 의미를 전했다. "세상은 변했고, 가치관은 변했지만, 더 절실해지는 것은 가족 간의 사랑이다."
윤 교수는 1970년대 이후 대가족은 대부분 해체되었고 최근에는 핵가족조차도 해체되어 1인 가족 시대가 되어가는 지금, "김수현 작품 속의 대가족은 사회문화 현상을 생각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의제 설정"이라며 "가족의 의미를 의식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가꾸고 지켜야 하는 안식처로서의 가족을 그리고 있다"고 의미를 분석했다.
이야기는 김수현 작가의 작품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탁월한 대사 표현으로 이어졌다. 배우 김상중은 직접 연기하면서 느꼈던 인상에 대해 먼저 말을 꺼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감자 좀 쪄줄래?''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며 극도로 감정이 날 선 상황에서 지극히 일상적인 대사가 나오는 것이 너무 인상적어서 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금주 작가는 <청춘의 덫>에서 화제가 됐던 명대사, ''부셔버릴 거야''를 언급했다. 일상적 상황의 대사는 구어체 대사를 사용하지만 "좀 더 적확한 표현을 써야 하는 순간에 빛을 발하는 김 작가의 뛰어난 직관력"에 대해 극찬했다.
김수현 작가의 대사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해야 하기로 유명하다. 김상중 씨는 배우 입장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완벽한 대본이라고 설명했다. 토씨 하나까지 완벽하게 계산된 대본이며, "배우의 왼쪽 모습과 오른쪽 모습 중 어느 쪽이 더 나은지까지 관찰해 대본에 반영하는" 것이 그의 대본이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자연스러움의 근원이 김수현 작가 자신에게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김수현 작가에게는 작위가 없다"면서 작품의 흐름이 바로 김수현 작가 자신의 삶의 궤적과 그 맥을 같이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앞으로 김수현 작가가 후배 작가들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다뤄주는 작품을 쓰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김 작가는 ''자폐아'', ''미혼모'', ''불륜'', ''동성애'' 등 우리가 애써 외면하거나 돌아보려 하지 않았던 시대의 문제들을 성찰하게 한다. 이는 작가 김수현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기도 하다. 젊은 작가들이 할 수 없는 무거운 주제까지, 그의 필력과 영향력이라면 충분히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담 말미에 박철수 감독은 ''여전히 김수현이라는 작가의 마당은 넓고 크고 견고하다''고 전제하고, 김수현의 에너지가 지속되어 우리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하기를, 그러기 위해 김 작가가 건강하기를 기원하며 이야기를 끝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