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작품의 여성 주인공은, 일반적으로 낭만적 사랑을 꿈꾸면서 육체적 순결을 유지하거나, 결혼을 통해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는 자신이 꿈꾸었던 중산층 가정의 이상이 깨어지는 것을 당혹스러워하거나, 그로 인해 새로운 낭만적 사랑을 찾아 일탈하는 1960년대 여성소설가들의 여성인물형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현대적인 면모를 지녔다고 보인다.
한국 방송극사의 흐름으로 볼 때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 김수현 드라마가 지닌 가장 큰 의의는, 자아와 욕망이 있는 현대적인 내면의 여성인물형의 등장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이전까지 여성인물형들이 자신의 욕망은 전혀 없이 가족과 대의를 위해 인고의 세월을 눈물로 견디는 현모양처이거나, 매력적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요부 등이었던 것에 비하자면, 이러한 인물형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의 첫 방송극 작품 <저 눈밭에 사슴이>(1968, 문화방송 창립 7주년 기념 라디오드라마 극본 현상공모 당선작)에서부터 그랬다. 품위 있는 작가이자 화목한 가정의 가장인 남자주인공의 아이를 낳고 결국 그 가정을 파멸로 몰아넣는 도발적인 여자 현주는 전형적인 팜므파탈형의 인물이지만, 이전의 남성 작가들이 그려낸 이해할 수 없이 타자화된 여성들과는 달리,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인물이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의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청순가련형이 아니며 <하녀>의 인물처럼 이해할 수 없게 괴기스럽지도 않다.
이후 첫 장편소설 『상처』(1977)를 비롯한 소설, 영화, 방송극에서 만들어낸 김수현의 새로운 여성인물형은 모두 강한 자의식을 지닌, 속된 말로 ''한 성깔'' 하는 인물들이다. 그가 만들어내는 여성인물형은 고아, 성폭력 경험자, 노처녀 등 결함을 지니고 있는 인물형이라는 점에서 자칫 신파적 양상을 드러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내면은 신파의 인물형과는 매우 다르다. 그들은 세상에 대해 불만이 많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세상을 고스란히 인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참고 있지도 못한다(세상에 스스로 굴복하며 고통을 참고 견뎠다면 신파가 되었을 것이며, 정면으로 맞섰다면 대중예술계에서는 존재하기 힘든 저항적 여성인물형이 창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지닌 결함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치명적인 것이라는 기존의 보수적 가치관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도, 이러한 상황을 견딜 수 없게 억울해한다. 이렇게 정상적 해결도, 인고의 안정감도 갖지 못하는 이 인물들은 엉뚱한 출구로 튀어나가 버린다. 사랑하지도 않는 엉뚱한 남자에게 시집을 가버리거나, 전혀 행복할 수 없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거나, 아니면 세상에 대해 복수를 하겠다고 외골수의 행동을 보인다. 그래서 그의 여성인물형은 도발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소설사의 맥락에서 보자면 김수현이 창조한 인물형이 아주 돌출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본격 소설사에서는 강한 자아를 지닌 여주인공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며(예컨대 1950년대의 박경리를 생각해 보라), 대중소설로 보더라도 이미 1960년대의 대중소설계의 여성작가들(강신재, 전병순, 정연희 등)에게 복잡한 내면이 있는 여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송극과 영화계는 상황이 달랐다. 영화계는 물론이거니와 방송극계에서도 여성극작가를 찾아보기란 매우 힘들다.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까지 이른바 애정물 작가들인 조남사, 김석야, 한운사, 임희재, 이경재, 이성재 등은 모두 남성작가이며(사극이나 홈드라마를 주로 쓰던 연배가 높은 작가들인 이서구, 김희창, 김영수 등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60년대 말 2, 3명의 여성작가의 비중은 매우 작았다. 따라서 1960년대까지 방송극의 여성인물형은, 주인공 남자의 갈등 대상이거나 남성의 안식처, 상투화된 인물형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1970년대 초중반에 들어서면서 가족물과 애정물에서 여성작가의 인기가 본격화되어 70년대 말에는 이른바 여성작가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연배가 가장 위인 남지연(1933년생), 김수현(1943년생), 나연숙(1944년생)이 그들인데, 남지연의 <결혼행진곡>, 김수현의 <신부일기>, <새엄마>, 나연숙의 <달동네> 등으로 인기몰이를 하였고, 여기에 1960년대 말부터 활동하던 박정란(1941년생)에 80년대 초에 성장한 김정수(1949년생), 홍승연 등까지 가세하면서, 방송극 작가의 성별 판도는 완전히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작가에 따른 편차가 심하기는 하지만 여성작가들은 남성작가에 비해 비교적 여성인물형의 내면 묘사가 강했으며, 이 중 김수현은 가장 개성 있고 강한 자아를 지닌 인물들을 창조해 내었다.
한편,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지만, 김수현 작품의 여성 주인공은, 일반적으로 낭만적 사랑을 꿈꾸면서 육체적 순결을 유지하거나, 결혼을 통해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는 자신이 꿈꾸었던 중산층 가정의 이상이 깨어지는 것을 당혹스러워하거나, 그로 인해 새로운 낭만적 사랑을 찾아 일탈하는 1960년대 여성 소설가들의 여성인물형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현대적인 면모를 지녔다고 보인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산층 가정에 대한 이상이 훨씬 적으며, 남자에 기대어 무엇인가를 성취하려는 기대 역시 적다. 여성의 사회적 노동이나 사회적 성취를 그다지 유별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따라서 가족 이외의 남자와 어울리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능력도 없으면서 권위로 찍어 누르려는 기성세대나 남자들에 대해 반항적이고 위악적(僞惡的)이며 이성적 통제가 불가능한 도발성을 띠기도 하는 것이 김수현의 여성인물형인 것이다.
김수현의 여성인물들이 보이는 이러한 성격은, 어느 부분에서는 청년문화 세대의 특성과 일치한다(청년문화의 최고 인기 작가인 최인호는 1945년생, 박범신은 1946년생, 조해일은 1943년생이다). 기성세대의 세상에 대한 불인정,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외적 세계의 현실성과 다소 절연하고 자신의 내면으로 집중하는 주체, 강한 자의식과 욕망, 때때로 보이는 비이성적인 돌출적 행동 등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대개 남성작가들이 주를 이룬 청년문화 세대의 작품들에서 여성인물형은, <별들의 고향>의 경아가 그러하듯, 기성세대의 잣대로는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지만 어린애처럼 순수한 영혼을 지닌 인물형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 여자의 고통과 억울함의 내면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기보다는 어린애처럼 순수한 영혼을 지닌 여자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사실 여성 관객의 입장에서 이런 여성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별들의 고향>의 안인숙, <겨울여자>의 장미희, 이전 세대의 작품으로 청년문화 시대의 감각을 담은 영화 <태양을 닮은 소녀>(이만희 감독)의 문숙 등은 물론이거니와, 비교적 현실적으로 그려진 <바보들의 행진>의 이영옥조차 뭔가 현실적이지 못하고 ''오버''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신비화된 그 여자들은 불가해하며 모호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매력적일 수 있다.
그에 비해, 같은 배우일지라도 김수현 시나리오의 <내가 버린 여자>의 이영옥, <욕망의 늪>의 장미희는 얼마나 현실적이며 설득력 있는가. 김수현의 여성인물들은 불가해하며 모호하여 순수해 보이는 신비로운 포장이 거두어져 있다. 대신 그 속은 현실에서 당한 고통에 대한 억울함과 그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들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수현의 작품은 청년문화의 이념을 드러내는 방식의 의미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통속적 애정물로 이해되었지만, 그저 통속적이기만 한 애정물과는 달리 현실적 인물로 채워진 탄탄한 드라마는 3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한다.